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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소하 Oct 27. 2024

1 - 성윤새 (3)

판타지 독립운동물 || 장편소설『 별이 그리 정했다 』

    돌아가니 영원이 있었다. 동생과는 달리 영원은 아주 새카만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인이라 까만 머리구나 할 정도가 아니라, 새카만 동굴이나 별이 없는 밤하늘을 떠올리게 될 정도로 아주 새카만 머리칼이었다. 들어오는 윤새를 뻔히 봤으면서도 인사도 없이 큰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살가운 동생과는 영 딴판이었다.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윤새도 안경원 사람들과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는 것이 곤란했으니까. 게다가 영원은 분명 비틀거리고 있었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한밤중에 비틀거리며 어깨를 감싸쥐고 들어올 이유는 하나 아니겠는가. 그의 속을 알 리 없는 명원은 불안한 듯 큰방 앞을 서성이다 조심스럽게 윤새의 어깨를 감싸고 귓가에 속삭였다. 언니가 낯을 가려서 그래요.

    흙먼지투성이가 된 진운이 피칠갑을 한 경식을 들쳐업고 급히 안경원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명원이 헉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켰다. 윤새의 심장이 반절 내려앉았다. 힘없이 감은 눈이 낯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 아니었던가. 딱딱한 말투에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능글거리던 얼굴 아니었던가. 사람이 다치고 죽는 것은 하루아침이라는 사실을 감히 잊고 있었다. 경식의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자욱에서 윤새의 눈앞에 잠시 그날의 타오르던 하늘이 스쳐갔다. 결국 윤새는 성천을 잃은 것은 하루아침도 아닌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었다.

    명원이 말릴 새도 없었다. 윤새는 앞을 막아서는 영원을 거칠게 내치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진운은 미약하게 숨을 내쉬는 경식을 천천히 바닥에 누이고 있었다. 그는 막무가내로 들어온 윤새에게 가시 돋친 시선을 보냈으나 우선순위를 판단했는지 이내 경식의 셔츠에 칼을 대었다. 이미 넝마가 되어 있던 셔츠가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뜯겼다. 업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경식의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총상이었다. 많고 많은 총상 중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총상이라는 사실을 윤새는 알고 있었다. 총알이 배를 관통한 것이 아니라 깊숙이 박혀 있었다. 왼쪽 가슴께 중에서도 한참 밑에 박혀 있으니 심장을 비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심장만큼이나 다치면 안 되는 곳이었다. 성천이 어린 윤새의 배를 찬찬히 짚어가며 가르쳐 주었다. 윤새야, 여기는 조선팔도로 치면 소백산맥이다. 태백산맥만큼 크고 길지는 않지만 사실은 그만큼 중요해. 그리고 우리는 아주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는 굳이 순서를 붙이지 않지. 그는 윤새의 왼쪽 옆구리를 꾹 눌렀다.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와 싸워야 할 때면 늘 기억해라. 이 소백산맥은 절대 다치면 안 되는 곳이야.

    이럴 때 떠올리라고 일러 준 게 아닐 텐데. 윤새는 울컥거리며 피가 솟아나오는 경식의 소백산맥을 내려다보았다. 경식은 숨을 내쉬는 방법을 잊은 것처럼 호흡했다. 윤새는 핏기가 가신 얼굴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누군가 귀를 꽉 막고 있는 것처럼 머리가 멍했다. 타인의 죽음을 이렇게 눈앞에서 목도하는 것은 처음이어서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안타까울 것이지 무섭고 두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새는 이 공포를 아주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이건 경식이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 어느 날 굶주린 배를 채워 주고 웃어 준 사람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주 가깝지는 않더라도, 혹은 다시 볼 일이 없게 될지라도 사라지지만은 않기를. 이건 절대 붙이지 않겠다고 생각한 정이다.

    윤새는 흙과 피가 잔뜩 묻은 진운과 영원의 옷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자신의 치맛자락을 길게 쥐어뜯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총상을 입은 부위를 압박하고 있는 진운에게 다가갔다. 진운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손수건을 세게 쥐었다.

    “비켜.”

    “성윤새, 너 미쳤어?”

    “그 덜덜거리는 손으로 하고 있는 건 지혈이야, 안마야? 비켜.”

    그제야 손을 떼는 진운에게 윤새가 말했다.

    “아저씨 머리 네 다리에 눕혀.”

    진운은 의외로 순순히 움직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경식의 머리를 감싸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렸다. 윤새는 길게 찢은 천을 경식의 허리에 한 바퀴 두른 뒤 총상을 입은 부위가 적당히 압박되도록 묶었다. 매듭을 동여매자 경식은 옅게 신음하더니 이내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윤새는 다급해져 영원에게 말했다.

    “영원 씨, 아저씨 다리 조금 들어주세요.”

    영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최영원.”

    “탄환을 제거해야 해요.”

    “뭐라고요?”

    윤새의 눈앞에 붉은 색이 번쩍였다. 다급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영원은 눈썹 한 올 꿈틀하지 않고 서랍을 뒤적였다. 그는 그 안에서 흰 상자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뒤적이더니 작고 뾰족한 집게를 꺼내었다. 경식이 희미하게 눈을 뜨더니 한숨 같은 숨을 내쉬었다. 윤새는 집게를 들고 다가오는 영원 앞에 손을 들어 막았다.

    “그건 지혈을 해서 피가 어느 정도 멎은 다음에 해야 해요.”

    “지금 해야 탈 없어요.”

    방 안에 잠시 정적이 오갔다. 윤새는 울컥 올라오는 고함을 삼키며 온통 붉어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총상을 압박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피를 멎게 하려면 다리를 들어 주어야 했다. 지혈이 제대로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투르게 탄환을 빼내려 했다가는 맥을 건드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었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은 지혈을 끝내고 신속히 의원으로 옮기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행위였다. 그런데 영원은 지푸라기는 짓밟아 버리고 애꿎은 집게 타령이나 하고 있는 것이었다.

    피 쏟는 동지를 내버려둘 독립운동가가 있겠는가. 윤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원의 행동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안경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데다가 오늘 영원을 처음 보았으니 그가 놓친 부분은 분명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알아채지는 못했으나 윤새는 결국 경식에게 가랑비에 어깨 적시듯 정을 주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끼를 대가로 마음의 일부분을 떼어 준 것이다. 하물며 지금 앞에 집게 들고 멀뚱거리는 영원은 어떻겠는가. 사지에서 함께 살아 돌아온 동료가 아닌가. 서글서글하고 오지랖 넓은 경식이니 윤새에게 그랬듯 영원에게도 한 끼 밥의 친절을 베풀었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은 몇 번이고 살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눈이 뒤집혀서 당장 지혈하고 업어서 의원에 내달려야 지극히 정상이다.

    “아저씨, 이거 물어요.”

    그런데 영원은 자기 옷을 찢어 지혈하지는 못할망정 경식의 입에 피 묻은 헝겊을 쑤셔넣는 것이었다. 입 안에 텁텁한 것이 들어오자 짧은 순간 정신이 들었는지 경식이 다시 눈을 떴다 힘없이 감았다. 손가락을 코 밑에 대어보니 숨결이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윤새는 집게를 들고 꿇어앉는 영원을 세게 밀쳤다. 영원은 뒤로 넘어가나 싶더니 곧바로 균형을 잡고 팔꿈치로 윤새의 명치를 쳤다. 윤새는 헛구역질을 하며 명치를 부여잡았다. 다시 달려드는 윤새의 양팔을 뒤에서 누군가 붙들었다. 우진과 명원이었다. 윤새가 벙쪄서 상황을 파악할 때를 틈타 영원이 경식의 허리에 동여맨 천을 풀었다. 낮게 욕을 읆조리며 총상에 집게를 가져다 대는 영원을 향해 윤새가 소리를 질렀다.

    “잘못 건드리면 죽는다고!”

    경식이 약하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살 수 있을 정도로 다친 사람이라면 더 크게 앓고 몸을 비틀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죽음의 문턱에 발을 올리고 있었다. 영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간을 구기며 상처에서 탄환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경식이 고통스러운지 손을 미약하게 들어올렸다. 진운이 급히 팔을 뻗어 그의 손에 덥석 맞잡았다. 윤새는 우진과 명원에게 매달린 채 다시 울컥거리며 피를 쏟아내는 상처를 망연자실하게 쳐다보았다.

    “정말 죽는다고…….”

    윤새가 무기력하게 중얼거렸다.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영원이 낮게 신음하는 소리를 내며 바삐 집게를 움직였다. 피가 덕지덕지 묻은 탄환이 틱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경식의 손이 툭 떨어졌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산이다. 초록으로 뒤섞인 그날은 떠올릴 때마다 늘 다리가 저려왔다. 윤새는 커다란 신갈나무 밑에 엉덩방아를 찧어 나동그라져 있었다. 허겁지겁 일어나다 무릎을 두꺼운 나무 뿌리에 잘못 박아 쥐까지 난 참이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윤새는 급히 만들어낸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윤새의 어깨를 밀쳐내었다.

    윤새는 일어날 때마다 다시 나동그라졌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자 조롱하는 뭉쳐 있었던 웃음소리는 잦아들고 경멸 어린 시선만이 남았다. 그러나 윤새는 포기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항이나 오기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었다. 힘없고 윤새에게 인간말종이나 할 짓을 일삼는 고아들의 무리에 억지로 끼어서라도 살아남고자 하는 발악.

그런 윤새를 땅바닥에 때려눕힌 것은 거센 손길이 아닌 칼날 같은 말 한마디였다.

    “야, 너희들 잠시만 멈춰라.”

    누군가 말했다. 윤새는 급히 무릎을 세워 반쯤 일어났다.

    “너 눈을 감으면 앞날을 보인다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알 수 있다며.”

    윤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굴에 달라붙은 낙엽을 손등으로 문질러 떼어냈다.

    “그러면 너는 장님이네.”

    아무 말이 없는 윤새의 이마를 누군가 손가락으로 툭 밀었다. 나무 뿌리 위에 엉덩방아를 찧은 윤새는 아프다는 말도 없이 조용했다. 반응이 사라지자 싫증이 났는지 그를 내려다본 아이들이 아쉬움과 조롱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데도 윤새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사라진 고요한 세상. 미워할 이조차 곁에 남지 않은 숲속.


    윤새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떴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윤새는 그제야 세상이 캄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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