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사주를 보러 가는지. 처음엔 호기심으로 하나 둘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후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얘기했다. 속이 시원했다. 사주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민이나 걱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이나 걱정을 남들에게 말하지 못해 속으로 끙끙 앓는 경우가 많다. 사주를 보면서 차츰 이야기를 시작하고 결국엔 눈물 콧물 다 쏟으며 마음의 응어리도 다 쏟아낸다. 그러면 기분이 한층 풀린다. 결국 사주는 어떤 해답을 얻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위한 상담소이기도 하다.
나 또한 반신반의하며 사주를 보러 갔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왔다. 처음이었다. 초면에 부모님께도 하지 못한 내 이야기를 한 것이. 당시 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취업 준비에 응했다. 노력하니 결과도 좋았다. 대기업 3곳에 서류전형에 통과하였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 적성 시험에서 모두 탈락하였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한 군데 정도는 합격할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열심히 준비하였기에 상심도 컸다. 수포자였던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도 듣지 않던 EBS 수학 강의도 찾아들으며 준비하였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또다시 끝없는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몸도 마음도 상당히 지쳐있었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듯 사주풀이는 한마디로 ‘용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끙끙 앓고 남에게 속마음을 비치지 않는 사람이라 했다. 맞았다. 단 한 번도 가족들이나 친지들에게 힘들다고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힘들다고 티 내는 사람보다 혼자 참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싶다. 그땐 그만큼 마음이 약해졌었다. 힘들다는 걸 발견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뒤, 이어진 말이 매혹적이었다. ‘관운’ 내 팔자에 관운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결국은 나랏일 할 팔자라 했다. 성격이며 사주며 공무원이 제격이라 했다. 공무원이라니. 단연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언제든 나가고 언제든 들어올 수 있는. 그런데 평생 같은 직장에 속해야 한다니.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시생 생활 또한 어떠한가. 눈 뜨고 감을 때까지 공부, 공부, 공부. 수험생 시절에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 엉덩이 싸움이라 했다. 진득하게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다 했다. 주위 얘기를 들어도 하루에 10시간씩 공부했다더라, 누구는 1년 만에 합격했다더라. 등등 그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같았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길도 없었다.
팔자에 있는 공무원 준비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다. 남들보다 몇 년 늦게 간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1차 서류&자기소개서, 2차 인·적성, 3차 PT면접, 4차 임원면접 등 오롯이 실력이 아닌 다양한 부수적 요소로 결정되는 채용 절차에 회의감을 느꼈다. 필기시험과 면접이라는 단순한 절차와 학벌, 학점, 스펙이 용인되지 않는 평등함, 오롯이 노력과 실력으로 합격할 수 있는 공무원 시험이 매력적이었다. 대신 스스로 조건을 걸었다. 2년. 2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지옥불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