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해진 Feb 04. 2021

숨이 쉬어져서 숨을 쉬듯, 공부하기

대학 졸업 이후 처음 앉은 책상은 너무나 낯설었다. 특히, 인터넷 강의로 공부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아 생경했다. 고등학생 시절, PMP나 전자사전에 인터넷 강의를 담아 듣는 친구들이 있었다. 도전해봤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그 뒤로 대학생 시절, 사이버 강의만 몇 번 들을 적이 있다. 역시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몇십 분을 의자에 앉는 게 곤욕스러웠다.      


허나, 선택지는 없었다. 흔히, 공무원 시험하면 ‘노량진’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공무원 학원이 밀집되어있어 시험이나 면접 정보를 공유하거나 스터디를 운영하는 등 공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비싼 수업료와 한정적인 현장 강의 수용 인원으로 접근성이 낮다. 특히, 지방에서 공부하는 공시생에게는 노량진 생활은 생활비, 월세 등 돈이 몇 배는 더 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은 인터넷 시장이 발달되어있었다. 수많은 강사들의 수업을 원하는 대로 수강할 수 있는 ‘프리패스’ 이용권이 유용하다. 프리패스도 종류가 다양하다. 강사와 무기한으로 이용 가능할수록 가격은 비싸진다. 어떤 강사의 어떤 수업이 자신과 맞는지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시생들은 가격이 높은 프리패스를 이용한다. 이런 고가의 프리패스는 합격할 경우 일정 비용을 환불해주는 조건이 있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환불규정과 무제한 이용에 끌려 당시 가장 고가의 프리패스를 구매했다.     


월급 받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는커녕 대학 졸업 후에도 여전히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불편하더라도 저렴한 이용권을 구매할까 고민했지만 이왕 공부하는 김에 실력 있는 강사들의 가장 좋은 강의만 골라 들어 하루빨리 합격하는 것이 보답이라 생각했다. 이 생각이 쉬지 않고 숨 쉬듯 공부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직업이 공무원 시험 준비생 ‘공시생’이 되었다. 요리사가 요리하고 연기자가 연기하듯이 당연하듯 공부했다. 직장인이 회사에 출근하듯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에 앉았다. 자연스레 책을 펴고 인터넷 강의를 틀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나면 점심을 먹고 약간의 휴식. 곧바로 다른 과목 책을 꺼내 인터넷 강의. 그리고 저녁시간. 또 공부. 마무리 공부. 어느새 고개를 들면 시간은 새벽을 가리킨다. 말은 쉽다. 밥 먹는 시간 빼고 공부한다는 게. 마땅히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겪어보니 달랐다. 쉽지 않았다.      


수험기간 초반에는 공시생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앉는 시간이 길어지니 몸도 따라주지 않았다. 허리가 저릿하고 다리도 퉁퉁 부었다. 차선책으로 서서 공부하기도 하고 누워서 책을 보기도 했다. 강의 배속도 초반에는 기본 속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1.5배속, 2배속으로 속도가 빨라졌다. 차츰 몸도 마음도 공시생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갔다. 아무 생각 없이 무던했던 나에게 감사하다.


생각이 많아지면 잡생각으로 본연의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 나를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하지 않아도 될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한없이 어두운 우울이 뒤덮는다. 그리고 시작된다. 나를 향한 나의 연민이. ‘아,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불쌍하게.’

이전 03화 아이고, 내 팔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