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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해진 Jan 20. 2021

꿈이 꼭 있어야 하나요?

처음부터 꿈이 공무원은 아니었다. 유년시절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요리사도 되고 싶었고 의사도 되고 싶었던 꿈 많은 아이였다. 한데,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꿈이 뭐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게 어려웠다.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가 어떤 재능이 있고 무슨 일에 관심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갔을 뿐이다. 학교로 등교해 친구들과 수업 듣고 점심 먹고 쉬는 시간에 장난치고,  떠드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행복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게 소중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적응하고 어느새 익숙해진 새로운 일상이 평범한 하루로 변했고 여전히 묵묵히 매일을 살아갔다. 졸업을 압둔 4학년이 되어서야 남들이 다하는 토익, 제2외국어, 컴퓨터 자격증, 인·적성 등을 공부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꿈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월급 많이 받는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간절하지 않아서일까. 결과는 늘 불합격. 처참했다. 그렇게 대졸 백수가 되었다. 이후 취업준비생으로 2년을 보냈다. 남들처럼 아르바이트하며 자격증 공부하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합격 발표 날에는 하루 종일 초조했다가 합격이라는 두 글자에 날아가듯 기뻤다가 바로 인·적성 공부에 몰두했다. 면접이라도 잡히면 기업분석에 예상 면접 질문도 만들고 자기소개도 달달 외우며 ‘최종 합격’만을 위해 달렸다.      


하지만 ‘불합격’ 수없이 마주쳤지만 늘 가슴 아팠다. 과연 내가 회사원이 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친구들은 이미 진로를 정하고 취업에 성공해서 사회인으로 앞서 나가는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으로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하루하루가 불빛 없는 컴컴한 터널을 지나는 듯 암담했다. 모든 취업준비생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혼자 남들과 비교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니 친구들과의 연락이 부담스러웠다.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하다 생각하니 남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뜻밖의 계기로 ‘취준생’이 공무원 준비생 ‘공시생’이 되었다. 답답한 자식새끼를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점을 보러 가셨다. 새로 생긴 절에 용한 법사님이 오셨다는 것이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내 사주에 관운이 있고 나랏일 할 사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권유하셨다. 사주를 믿고 공무원을 준비하라니. 얼토당토 하지 않았다. 반대하는 나에게 어머니께서 법사님을 만나보라고 권유하셨다. 그리고 그 만남이 나를 공무원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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