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탕 Nov 01. 2020

오늘만큼은 아이가 없는 곳으로 갈래요.

레고카페 브릭스 제주에서 혼자 놀면서 그림 그리기

아쉽게도 비행기 안에서 그림을 한 장도 못 그린 채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우선 숙박지를 가기 위해 100번 버스를 타야 한다. 정류장을 찾았고 버스 방향도 몇 번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랐다. 나도 창문을 열면 바다가 눈앞에 차아악 있는 곳에서 묵고 싶어서 바다 앞 호텔을 예약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다 앞 숙소는 버스로 가기 힘든 곳에 있다. 그렇다면 택시를 탈까?


불안이: 싫어, 택시는 무서워

강박이: 택시는 답답해, 숨 막혀.


그렇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택시를 못 탄다. 결국 나의 여행은 버스와 두 다리로만 사용 가능. 그래서 호텔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버스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로 정했다. w호텔에 가방을 냅다 던져놓고 바로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다는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제주에서 첫 번째로 어디를 갈까? 장소 따위 별로 고민하기 싫다. 아이 출입 금지라는 어른이를 위한 곳. 김녕 남흘동에 위치한 레고 카페로 정했다. (오늘만큼은 아이가 없는 곳으로 갈래요.)

720번, 잊어먹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입으로 중얼중얼거렸다. 버스를 타서는 오직 남흘동만 생각했다.


불안이와 강박이랑 720번, 남흘동만 생각하다가 창문을 바라봤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파란색 바다.

아! 맞다, 여기는 제주도. 720번 버스가  덜컹 거리며 해안도로를 달리니 이제야  내가 제주도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는데 불안이가 바짝 내 등에 붙어 있어서 또다시 남흘동을 외웠다. 난 아직 바다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안된 거다.


드디어 남흘동, 하도 입에서 중얼거렸더니 멀미가 날 지경이다. 내려서 정류장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동네가 조용하다. 이런 곳에 정말 레고 카페가 있긴 있는 거야?  구멍 쏭쏭 뚫린 제주 담벼락 너머로 빨랫줄에 아이 옷 어른 옷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널려있다. 빨래가 있는 걸 보니 사람 사는 동네는 맞군.  그런데 모두 어디 간 거야? 사람 한 명 멍멍이 한 마리 안 보여.


브릭스 제주 도착.

당시 용돈만 생기면 레고로 탕진을 하고 있는 상태라  레고 구경을 열심히 했다. 갖고 싶은 녀석들이 너무 많아서 손에서 땀이 나고 지갑이 몇 번이나 들락날락 물욕을 참느라 힘들었다. 다행히 비싼 녀석들은 전시품이라 팔 수 없다고 했다.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 내 마음 무엇이더냐? (네가 원하는 게 뭐니?)


하루 종일 쫄쫄 굶어서  떡볶이도 사 먹고 후식으로 레고 모양 초콜릿도 먹었다. 초콜릿이 들어가니 기분이 가 좋다. 강박이와 불안이는 문밖으로 내쫓아버렸다. 소파에 앉아 레고 조립도 하고 틈틈이 음식과 주변 사람들을 그렸다. 이 시간에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초콜릿 먹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이라니. 천국이 따로 없도다. 나가기 싫다. 여기에 천년만년 있고 싶어.

그래도 비행기 타고 제주도를  왔으니 바닷가는 한 번 걸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니 바로 몇 미터 앞에 바다가 있다고 한다.

 '좋아, 바닷가에 가서 어반 스케치 한 번 제대로 하자.'

바닷가로 향해 길을 걷는데 정말 동네에 사람이 없는 게 확실하다. 걷는 동안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만 개 두 마리가 나만 따라온다. 난 개 공포증이 있다고.  너무 무서워서 뛰지도 못하고 빨리만 걸었다. 잉잉 "얘들아, 따라오지 마, 어서 저리 가라 가'

얘네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뒤를 돌아보니 멍멍이들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혹시라도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후다닥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이전 03화 불안이와 강박이를 데리고 제주로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