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비웃을쏘냐
나는 평범한 집에서 30만 원짜리 과외를 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을 갔고 직장을 얻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든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던지 간에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어느 정도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었고 다행히 무리 없이 20대 안에 완수해야 하는 튜토리얼을 석세스 하였다.
하지만 30대가 넘어서 결혼과 내 집 마련, 자녀를 낳는 것부터는 어느 정도 대운이 따라줘야 하고, 부모의 배경에 따라 얼마나 더 짙게 인생을 색칠할 수 있는지 그 격차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흔히 블라인드 같은 내로라하는 회사의 간판을 단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보자면 부모님은 흙수저인데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그런데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부모님께서는 내 결혼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자금 여력이 되지 않는다. 는 뉘앙스의 글이 굉장히 많다.
나 또한 머리 위에 운이 좋게도 꽤 괜찮은 간판을 달고 있었고 이 때문에 주변에는 서울이 본가인 어느 정도 사는 집 자제들이 도처에 존재했다. 당연히도 양질의 사교육 혜택을 제대로 받은 이들은 좋은 직장을 얻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좋은 간판을 달고 있다는 것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과 같다.
입사 3년 차 까지는 서로 간의 격차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회 초년생인 데다가 업무가 서툴러 차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결혼이라는 대 행사가 시작되면서 서로의 금전 상태가 어느 정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결혼식이나 예물로 받은 가방, 이런 것이 전부가 아님을 집값이 이렇게나 올라버린 지금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느낄 수가 있는데 진정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는 서울이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경기권 그것도 아파트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당장 빌라 방 2개짜리 전세를 보러다 님으로써 오히려 결혼으로 내 삶이 다운그레이드 되는 체험이 가능하다.
우리가 결혼 당시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은 6500만 원이었다. 이 마저도 집에 온전히 다 사용하기는 어려워 결혼을 결심하고 난 후 1년간 남편은 200만 원, 나는 150만 원씩 저축 해 만들어진 4천만 원으로 스드메, 신혼여행, 혼수를 해결하였다.
볕 하나 들지 않는 투룸 빌라에서 버틸 수 있던 것은 우리 부부가 가난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서울에 자가를 마련해 이미 저 멀리 뛰어나간 동료들은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20대의 튜토리얼을 어느 정도 완성했으니 앞으로도 열심히만 산다면 적어도 10년 뒤에는 내 집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 무지했던 지식의 한계가 오히려 득이 되었던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떻게 투룸 빌라를 벗어나 투자라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