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의 인생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몫이었다.
책임.
무겁고도 단단한 말이다.
그건 단순히 넋 놓고 지켜보겠다는 뜻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끝내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
나는 그들을 보면
믿음직스러웠고,
동시에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배분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제나 이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계획과 실행력 위에
수많은 변수들을 견디고, 감당하고, 돌파해 낸다.
결국엔 일을 ‘완주’하는 사람.
그 힘의 이름이 바로 책임감이다.
42.195km 마라톤을 완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반드시 끝까지 간다’는 신념이 배어 있다.
그것은 체력이나 훈련 이전에,
책임감이라는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완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나.
그래서 더 두려웠다.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이제는
워킹맘이 아닌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회사도, 가정도 핑곗거리로 삼을 수 없는
완전히 나의 몫인 선택
언제나 사랑은 내 안에서 분명 꿈틀대고 있었다.
휴직 후 미국에서 아이들과 더 가까이 함께한 1년,
첫째 아이의 반짝이는 호기심과 가능성을 보았고,
둘째 아이가 들려주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은
지친 내 마음을 웃게 했다.
그럼에도,
엄마로 산다는 건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문제가 뭔지도 모른 채,
정답을 알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세계.
잘하고 있는 건지조차 알 수 없고,
누구에게 평가받지도 못하는 세계.
어린 시절부터 나는
사람들의 칭찬이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주는 상은 가능하면 모두 받고 싶었다.
모두가 바라보는 길 위에서
성실하게, 원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 자세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나를 가고 싶은 곳, 어딘가까지 데려다주었다.
좋은 대학, 이름 있는 직장,
믿음직한 사람과의 결혼,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하는 삶.
나는 스스로를 ‘효녀’라고 여겼다.
몇 번의 실수를 빼면,
나름대로 괜찮은 인생 같았다.
대학 졸업 이후,
18년을 ‘마케팅’이라는 한 길 위에서 달렸다.
2020년,
나는 가보고 싶었던 자리,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이 되었다.
승진이 확정되던 날, 눈물이 났다.
그 직함은 지금까지의 나를 증명해 주는 보상 같았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때로는 밥을 먹으며 일했고,
밤에는 떠나지 않는 생각에 잠을 설치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믿었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조용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감정과 생각이 요동칠수록
그 불균형은 고스란히 몸에 스며들었다.
매일같이
해결해야 할 일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화와 걱정, 불안에 휩쓸려
그 감정들이 곧 나 자신이라고 착각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감정 속에서
진짜 내 마음이 어디 있는지,
그 고요한 지점을 잠시 멈추어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요가를 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는 감정과 생각을 ‘경험’하는 존재일 뿐,
그 자체가 본래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감정과 생각을 흘려보내고,
잠시 멈추어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
호흡에 집중하며,
불편한 부위가 어디인지,
나의 숨결은 어떤 상태인지,
그 모든 것을 자각하는 매트 위의 나.
돌아보면,
나는 내 마음이 내 몸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매일 아침,
보이는 이미지를 위해 메이크업을 하고
불편한 구두를 신은 채
몸을 세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른쪽 어깨에 날카로운 통증이 찾아왔다.
물리치료와 침, 스테로이드 주사에도
그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3년 넘게 반복되던 그 고통은
똑같은 일상 속에서 다시 나를 찾아오곤 했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어느새 나를 지탱해 주는 주문이 되었다.
‘바쁘다’는 말은 곧
“나, 지금 잘 살고 있어.”라는 선언이었다.
나는 인생이 이론처럼 작동한다고 믿었다.
정답이 있고,
공식처럼 움직이며,
모두가 손뼉 치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 여겼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해 살고 있었던 걸까?
내 두 아들을 돌봐주신 부모님.
매일 지쳐 돌아오는 딸에게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나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셨다는 걸
나는 아주 나중에야 들었다.
그 틈을 조용히 메워주시던 부모님의 존재.
환갑을 넘기신 그때도
두 분의 시간은 여전히
손자들의 하루로 채워지고 있었다.
‘효녀’라는 내 이름이
그 어느 때보다 부끄러웠다.
지금 내 나이 마흔넷.
그럼에도 만약, 지금부터
내가 인생을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스스로를 너무 닦달하지 말고,
매사에 너무 심각하지 말고,
고민도 좀 덜 하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김혜남 작가님의 글을 읽는 순간,
굳은 어깨를 누군가 조용히 안아준 듯
눈물이 쏟아졌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때로는 하늘도, 책도, 바다도 바라보며
그냥 행복하게 웃으며 살고 싶었다.
결정에 꼭 많은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의 기준을
다시 써 보기로 했다.
누군가 보기엔 무모하고,
어떤 이에게는 도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선택은 어떤 변명도, 핑계도,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이제는 내 삶에 진짜 책임을 지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기준 속에서 살아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냥 나를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작가의 말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위해 많은 이유를 찾습니다.
그 이유들이 우리의 결정을 정당화해 주고,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선택의 기준에
누군가의 기대나 기준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이라는 한 줄을 써보았습니다.
퇴사를 결심하면서,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 가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저를 붙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라는 정의를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는
삶의 전환점에 설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나의 결정이
진심으로 ‘나를 위한 선택’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시작이라면,
나는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선택에 수많은 이유도, 어설픈 변명도,
누구의 기준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 자신을 믿는 용기 하나로 힘을 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