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앉아 있어도 마음은 쉬지 못하고,
숨을 들이쉬어도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던 긴 시간.
그 시간을 지나,
매트 위에서 처음으로 나의 숨을 바라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서 마음의 동요를 멈추게 할
가능성이 열리고 있음을 느꼈다.
내 안에서 격렬히 충돌하던 수많은 감정들이
하나둘 조용히 힘을 잃고,
천천히 나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나를 지배하던 낯선 무언가가
조용히 떠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본래의 나로 되돌아온 듯한 그 감각은,
아이들이 즐겨 보던 만화 속에서
어두운 영혼의 그림자가 빠져나가고
아이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믿었다.
내 안에, 나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마지막 팀장 리더십 평가에서
내 강점은 회복탄력성이었다.
부드럽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힘.
겉보기에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 안에서는
조용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 싸움을 어떻게 잠재워야 할지 몰랐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흔들렸고, 휘둘렸다.
끝없이 밀려오는 생각과 감정에 쓸려 다니며,
그중 가장 강한 감정 하나가 남을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결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묻곤 했다.
“A와 B 중 무엇을 선택할 거야?”
마치 선택의 책임을 나눠지듯.
나는 강해지고 싶었다.
내 안의 불안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그게 진짜 강함이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요가를 배우면서
그 믿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진짜 강함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막힌 흐름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이 지나가는 길목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우리 몸엔 7개의 큰 에너지 소용돌이,
‘차크라(Chakra)’가 있다.
의식이 흐르는 이 통로의 중심점이 막히게 되면
몸과 마음 그리고 행동과 힘의
불균형을 겪게 된다.
차크라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따로 깊이 나누고 싶다.
그때의 나는
소리의 발원지를 찾아가
혼자 빠져나왔다.
그걸 ‘도망’이라 불렀고,
‘회피’라고도 했으며,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자책했다.
“또 도망가려는 거야?”
“지금껏 잘해왔잖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잖아.”
18년이나 몸담은 분야잖아.
문제를 보면 감으로도 길이 보이지 않아?
복직일까지 두 달 정도 남아 있었다.
돌아가 부딪쳐보면
답이 보일 거라 믿었다.
미국으로 떠나기로 한 결심을
팀원들에게 전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동안 쏟아부은 열정과 애정을
내 손으로 내려놓는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났다.
나는 이 일이 좋았다.
마케팅이 좋았다.
18년을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이 선택을 후회한 적 없었다.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수많은 제품 사이에서
왜 이 제품이어야 하는지,
이 제품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가치를 선명히 드러내고,
이 제품이 필요한 사람들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일,
그리고 삶을 이롭게 하는 일.
그것은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무형의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었고,
언제나 세상에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매출이라는 숫자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증명이었지 목적은 아니었다.
그 일은 사람들의 삶과 닮아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여정.
그래서 살아 있었고, 재미있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했던 인사,
“1년간의 휴직 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건 내 삶의 태도였다.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는 것.
그래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있던 자리로.
그 자리가 지금 거기 없더라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마음속 싸움이 끝나가는 듯했지만,
다시 불씨처럼 소리가 살아났다.
“어떻게 하고 싶어?”
“정말, 돌아가고 싶은 거야?”
현실을 버리고
새로운 길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기다렸다는 듯이 요동쳤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저 부끄러운 도망도, 비겁한 회피도 아니었다.
그 마음이 향한 곳엔
또 다른 현실이 있었고,
그곳엔 나와 함께 숨 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보는 아이들
태어나 처음으로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두 생명.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내 안녕을 빌어주는 엄마, 아빠
나를 믿어주는 든든한 남편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타인을 위한,
그러면서도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사랑
그래서, 그 선택은
희생이 아닌
'나의 선택'이 되어야 했다.
나는
내 인생의 거의 절반을 걸어와
지금, 마흔 중반에 서 있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나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