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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언 Sep 08. 2021

행복의 역치

행복의 역치가 자꾸만 높아진다. 그래서 힘들다.



이전엔 행복이 근력 운동과 같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모르는 게 나았으려나.



근력 운동을 지속하면 역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행복이 반복되면 역치는 금방 높아진다. 처음에야 받아들이기 벅차지만 몇 번 반복되고 나면 금세 익숙해지는 것이다.



행복에 이리도 쉽게 무뎌질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는데. 예전엔 그리고 꿈꾸던 것들이 당연시되자 자꾸만 건방져진다. '이 정도의 행복'은 삶에 있어 필수 가결한 것이고, 이젠 더 크고 멋진 행복을 원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수놓아주던 행복은 더는 감흥을 주지 못한다.



제대로 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선 더욱더 즐거운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단련된 근육에 자극을 주기 위해선 중량을 늘려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필수 가결하게도 그 모든 상황엔 돈이 들어간다. 그것도 많이.



용돈의 일 할만 써도 행복하던 꿈만 같은 시절이 있었다. 삼만 원 남짓으로 맛난 밥을 사 먹고,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를 알차게 보냈단 생각에 절로 뿌듯하곤 했다. 그리고 서른의 나는 월급의 오 할을 아낌없이 써봐도 즐거움을 오래 잡아두질 못한다. 영수증이 마르기도 전에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무던해진다. 허투루 돈을 썼다는 농도 짙은 죄책감은 덤이다.



언제부터 이리 고급스러운 사람이 된 것일까. 100짜리 행복을 100만큼 오롯이 느끼고 싶은데.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 들인 돈에 비해 참으로 짧다. 그렇다고 수입에 맞춰 규모를 줄여 줄 정도로 행복은 친절하지가 않다.



행복이 근력운동과 모든 결을 함께한다면 이란 말도 안 되는 가정을 세워 본다. 운동하지 않고 누워만 있으면 근력이 줄어들지 않던가. 오랫동안 느끼지 못하면 행복의 역치도 낮아질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한 줌 행복에도 함박웃음을 지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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