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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05. 2020

갑자기 늙어 버렸다. 준비만 하다가. / 이루시엔

요즘 내가 좋아하는 단어 또는 문장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더 강하게 와닿을 때가 있다. ‘어른의 글쓰기’라는 수식어가 붙는 문학평론가 고 황현산 선생마저 이런 말을 하다니 ‘나이 먹음’은 그 누구에게도 노련하지 않은 일이구나 한다. 이윽고 이어지는 황 선생의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 준비만 하다가’ 트윗 구절은 앞으로 펼쳐질 내 삶을 엿보고 온 기분마저 든다.


  숫자에 의미는 누가 부여하는지. 나이 앞자리 수가 바뀌는 건 이제 설레는 일은 아니다. 놀이터에서 힘 좀 쓰기 위해 9살에서 10살이 빨리 되고 싶었고 19살 때는 20살이 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면 29살이 된 지금 30살은 미지의 영역이다. 서점에는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가 있고 TV에는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라는 각본을 쓰는 ‘서른’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가 나온다. 도대체 서른이 뭐길래. 다들 서른 서른 하는가.


  나이가 무슨 대수라고. 라고 생각하지만 집에서, 회사에서 들어오는 나이 타령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고작 앞의 자리 하나 바뀌는 건데도 꽤 많은 의젓함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난 아직 세상엔 모르는 게 천지고 배워야 할게 널렸다고 믿는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시시 각각으로 변하고 재테크는 뭔가요? 하는 주식마다 족족 물리고, 집 구할 생각없고, 인간관계는 계속 답을 모르겠고, 회사 승진 욕심도 없습니다. 라고 연막을 치고 있으면 ‘이제 너도 알 건 다 알지 않느냐’는 눈빛이 따라온다. 그래도 아직 어려서 모르는 것들 투성이야, 라고 밀어붙이면 ‘너 그렇게 어리지 않아’라고 갈비뼈를 분지르는 말이 날 덮친다.


  지금이 고3 때와 큰 차이가 있나 싶다. 취직은 했지만 커리어우먼과는 거리가 있고 빼입은 정장보다는 아직 청바지가 편하다. 여전히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게 재밌으며 실연당하면 민망한 줄도 모르고 꺼이꺼이 운다. 인간관계에서 주관이 좀 더 생기고 부모님과 싸운 후 ‘용돈 끊는다’는 협박을 안 듣는 정도가 달라진 점일까.


  황 선생 말대로 한 번도 어른이 돼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취직을 하고 적금을 붓고 청약통장을 만들고 운전도 배우고 하면서 어른이 한다는 일을 흉내 내며 준비를 해보긴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흉내낸다는 느낌이 강하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막연히 생각하다가 다시금 황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준비만 하다가 갑자기 늙는댔지 참.


  20대 중반, 같이 취준을 하던 스물아홉 언니는 이맘때쯤 집에서 맨날 운다고 했다. 이십대가 가는 게 무서워서라고 했던 것 같다. 한달 전 같이 밥을 먹었을 때 서른둘이 된 언니는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언니 말로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데 그때 앞자리 수 바뀌는 게 뭐가 무섭다고 울어 재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스물아홉에도 서른둘에도 안 풀리는 건 여전히 안 풀리니 그냥 그런대로 살기로 했단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대목이다.


  스물아홉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서른이란 어른인 척하면 아직 세상을 다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라 욕먹는 나이이자 어리다고 하기엔 마냥 어리진 않은 나이’라는 드라마 대사가 더 와닿을 날이 온다. 어쨌든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속 은수가 맞이했던 삼십대를 조용히 기다려야겠다. 생각보다 시시할 것 같지만 그래도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새삼 삼십대 여성이 십대 후반, 이십대 후반과 같이 사람에, 사랑에 요동치는 작품이 많아져서 참 다행이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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