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8Y24nX3Eaqw
오늘의 취재 대상은 30년이 넘게 교직에 몸담았던 교장이었다. 물론 교장을 맡았던 건 마지막 5년 정도다. 그는 인터뷰 중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라고 말했다. 입 밖으로 나온 건 고작 한 문장이었지만, 거의 일평생을 그 문장을 만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 문장의 무게는 무겁다. 아이들만큼 경험으로 달라지는 케이스가 없다는 걸 평생에 걸쳐 확인해온 사람 아닌가. 칭찬을 넣으면 밝아지고, 긍정적이 되지만 꾸짖음을 넣으면 삐뚤어지고 어두워진다. 그는 자세하게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지만, 나는 그 얼굴에 감돈 여운을 봤다. 30년을 고작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나는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서 내 과거를 돌아봤다. 나는 상당히 삐뚤어진 인간인 것 같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고 어느 정도는 범주에 든 것 같지만, 때때로 그것은 전두엽에 힘을 줘서 일어난 일일뿐 내 내면에는 입력받은 것들의 결과가 잠자거나 혹은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면, 학대를 받은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물론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동정이 아니라 공감한다는 건 장점이지만. 모든 것엔 양면이 있다. 요즘 생각하는데 나는 다소 사디스틱한 본성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애비에게서 물려받은 거지만, 유전자나 환경 둘 중 어느 한 쪽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성격은 그 둘의 조합이기도 하고. 열심히 기르진 않았기에 자라진 않았지만, 그것의 뿌리는 가해자와 맞닿아 있다. 나는 그 존재 자체를 증오하는데 이게 자기혐오를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나도 가해자로 자랄 속성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해자를 증오하고, 그와 비슷한 것을 보면 치를 떨었던 주제에 꽤나 모순된다는 점을 눈치채는 건 반갑지 않고 꽤 비릿하고 역하다. 아직도 자신의 이런 냄새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요즘 올블랙을 입고 다니나 보다.
애비의 마인드와 가치관과 사상을 계승하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다소 관조하는 자세로, 내게 비극적이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그저 '입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입력을 어떻게 다루느냐를 개인의 몫으로만 돌리는 것은 사회적 폭력의 일환이겠지만, 개인이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것도 사실. 그리고 난 꽤 잘 해왔다. 냉정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에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지나칠 정도로 반대 방향 인지만을 따져 강박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정작 내가 원했던 게 무엇인지를 잊을 때도 종종 있었던 부작용도 있지만, 어찌 됐든 또 한명의 피해자를 찾거나, 누군가를 괴롭혀야만 만족하는 삶의 자세를 계승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또 하나의 감옥에 갇힌 것과 같다. 바르게 살아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면 '역시 그 자식의 피를 이었다'는 스스로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