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거래
"엄마, 근데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아빠랑 떨어져 지내야 해?"
달링하버 앞 멕시코 식당에서 음식이 서빙되길 기다리는 민준이 물었다. 맛있는 고기 뷔페를 먹을 생각에 들떠 있다가 자리에 없는 가족 한 명이 문득 그리워진 것은 엄마인 주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러게... 아빠 많이 보고 싶니?"
"아빠랑은 가끔 영상통화도 하지만... 친구랑 사촌들도 보고 싶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잘 지내시겠지?"
"그랬구나, 엄만 너희가 너무 적응을 잘해서 한국이 그리운 줄도 몰랐네?"
"여기도 좋아, 재밌고. 나 호주 체질인가 봐. 음식도 잘 맞고 애들이랑 축구할 때도 별로 안 싸워."
"한국에선 많이 싸웠어?"
"한국에선 축구 잘하는 애들이 나 못 한다고 무시하고, 안 끼워줬는데, 여기서는 체육 시간에 하도 축구를 많이 해서 실력이 많이 는 것 같아."
민준은 제 자랑을 해놓고 쑥스러웠는지 고개를 으쓱하며 웃다가 치킨 바비큐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달링하버 놀이터 앞 브라질 식당 'Braza'의 디너 뷔페에서는 소, 양, 돼지, 치킨 할 것 없이 다양한 고기 바비큐와 과일, 디저트까지 무한대로 먹을 수 있다. 직원이 바비큐 꼬치를 들고 돌아다닐 때 테이블 위 모형을 초록색이면 '계속 먹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계속 음식을 가지고 온다. 모처럼의 외식에 민준이 욕심을 부렸다. 주이는 민준이 접시에 고기를 잔뜩 쌓아두고 차근차근 먹는 모습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주이의 열세 살 아들 민준은 시드니에 온 뒤로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잘 적응했다. 예민한 동생도 잘 돌보고,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공립학교 생활도 빠르게 적응했다. 다행히 학교에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 친구들이 많아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큰 어려움 없이 친구를 사귀었다. 서툴었던 영어는 친구들과 어울리니 자연스럽게 늘었고, 자기는 호주 체질이라며 계속 살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랬던 민준이 며칠 전부터 부쩍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아빠와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게 아닌가. 향수병이 도진 걸까? 아무리 현지 적응이 빠른 아들이라도 조국이 그리운 것은 본능인가 보다.
"사실은... 엄마도 잘 모르겠어... 계속 여기서 시드니 전집을 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좋을까?"
새콤달콤한 소스에 결들인 샐러드를 포크로 뒤섞으며 주이는 자신 없게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얘들아!"로 시작하며 앞날의 계획을 아이들 앞에서 일장연설했을 그녀인데, 힘없이 대답을 얼버무리는 엄마를 보고 민준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엄마, 그럼 우리 한국 갈 수도 있는 거야?"
"언젠간 가야지? 엄마도 아빠랑 할아버지, 할머니 다 보고 싶어. 너처럼 친구들도 그립고."
"언제 갈 건데?"
"아들, 엄마가 시드니에 왜 왔다고 했지?"
주이는 갑자기 민준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물었다. 엄마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란 민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정답! 부자가 되려고!"
옆에서 고기를 쩝쩝거리던 막내 민서가 정답이라도 맞춘 듯 당당하게 외쳤다. 주이는 그 모습이 하도 귀여워서 민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접시 위 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 입에 넣어줬다. 민준도 그런 동생이 귀여웠는지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동생은 오빠의 손을 매정하게 거부하며 공격태세를 갖췄다.
"또 싸운다..." 매서워진 주이의 눈빛에 민준은 시작하려던 장난을 멈추고 주이에게 물었다.
"엄마, 시드니전집에서 돈 많이 벌지 않았어? 엄마는 TV에도 나왔잖아?"
"TV에 나왔다고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야, 그리고 이 정도론 부자라고 하긴 어렵지..."
"그럼 엄마는 얼마나 벌고 싶은데?"
"음... 일단 얼른 부지런히 먹어, 더 맛있는 음식이 계속 나오고 있잖아?"
아들에게 받은 '얼마나 벌고 싶은데?'라는 질문은 시드니에 전집을 차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이가 쭉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주이는 여전히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주이에게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는,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는 호주를 원할 때면 언제든 가고 싶어서 세운 것이었다. 으리으리한 집, 고급 외제차, 명품 가방이나 시계를 사고 싶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려면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번 다음 그 돈으로 마음껏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주이는 검게 그을린 피부의 건강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지금이 '부자'행 열차의 간이역 어디쯤이 아닐까 생각했다. 부자가 되면 누리고 싶었던 행복과 지금의 여유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슨하게 느끼고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낮 3시까지, 정한 시간에만 일했고 초과 근로는 거의 없었기에 이른 아침과 3시 이후에는 제법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햇살이 어둠을 밀어낼 때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하이드파크에서 아침산책을 하고 매일 다른 카페에서 향긋한 바나나브레드에 플랫화이트 한 잔을 마셨다. 오후에는 책 냄새가 가득한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아이들과 텀바롱 공원에서 놀다가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주말이면 맨리비치에 선착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루종일 카약을 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게으름을 피웠고, 동네마다 열리는 마켓을 어슬렁거리며 눈호강을 만끽했다.
아이들은 한국의 각박한 사교육 시장을 벗어나 엄마와 공부로 다툴 일도 없었다. 시드니 공립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보장했다. 사교육으로 시켰던 교육이 이곳에선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예체능은 물론 발표회, 조별 체험활동 등은 아이들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한국의 생활비와 사교육비를 합한 비용이 이곳에서 드는 생활비와 별 차이가 없는데도, 만족도는 갑절이 높았다. 주이와 주연, 그리고 아이들은 각자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주이는 시드니에서 보내는 시간은 유한하다고 여기며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잠도 여섯 시간을 초과해 자지 않았다.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삶이라는 게, 가능한 것일까? 어쩌면 모두가 살고 싶은 인생, 꿈꿔왔던 행복은 이런 것이 아닐까? 마음이 자연스럽게 기우는 대로 여행하듯 사는 것. 이런 일상들은 주이의 인생에서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삶이었다.
주이는 디저트로 나온 튀긴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물고 황홀한 표정으로 주연에게 물었다.
"이 튀긴 바나나, 진짜 평생 그리울 것 같지 않아?"
"나도 방금 그 생각했어. 어떻게 바나나를 이렇게 맛있게 튀기지?
"난 옷 사 입는 것보다 달링하버에서 노을 보며 튀긴 바나나 먹는 게 훨씬 좋다. 후훗."
주연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주연의 입에 묻은 고기양념을 주이가 테이블 위 휴지를 찾아 부드럽게 닦아 줬다. 주연은 지나가는 직원에게 바나나 튀김을 하나 더 달라고 요청했다.
"주이야, 난 언니는 여기서 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 여기서 하는 모든 경험이 다 새롭고, 돈을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와... 언니가 내 마음속에 턱 하니 들어와 있네?"
"이제까지 내가 번 돈을 너무 쓸데없는 곳에 썼다는 생각이 드네. 이제라도 가치 있게 쓰고 있어."
"그러게... 나도 스물다섯부터 계속 회사에 다녔고, 지금까지 번 돈을 합치면... 아마 5억은 넘을 것 같은데, 와... 이제까지 5억이나 되는 돈을 어디에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 거, 실화야?"
"언니는 너보다 더 오래 일했거든? 이제까지 번 돈 대부분이 제대로 된 가치와 거래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호주에 와서 살면서 네가 말한 그 배거본딩의 의미를 되새겨 봤어."
"오... 내가 언니 데리고 오길 잘했는데?"
"잘했지 그럼. 집에만 있으면 맨날 똑같은 하루를 보냈겠지. 근데 여기서는 하루하루가 특별해. 제대로 쉬고 있어. 재이랑도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고, 또 배우고 싶었던 수영도 배우면서 이제야 내가 진짜 나를 위해 내 시간과 돈을 온전히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멈춤'없이 살았다면 절대 못 느꼈을 감정이지?"
"맞아. 진짜 잘한 결정이었어. 너 아니었으면 이런 감정 평생 못 느꼈을 것 같아 너무 고맙다."
"에이, 내가 외로울까 봐 언니 데리고 오려고 수 쓴 건데, 언니가 제대로 말린 거지 뭐. "
"그런 수라면 백 번도 말려도 돼. 나는."
더 이상 음식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배가 부른 아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텀바롱 놀이터를 향해 뛰어갔다. 정글짐과 이름을 알 수 없는 희한한 놀이기구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달라붙어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주이와 주연은 맥주와 함께 수다를 이어갔다. 청량하고 시원한 저녁 공기, 터질 것 같은 배, 뛰어노는 아이들, 이 모든 것이 적당히 알맞은 저녁이었다.
"언니, 난 여기서 진짜 좋은 게 하나 더 있는 게 그게 뭔 줄 알아? 여기선 나를 치장하고 드러낼 필요가 없어. 아까 돈의 가치에 대해서 말했지? 그동안 나를 치장하는데 썼던 돈이 진짜 나를 위한 소비였을까 생각하게 됐어. 알지? 나 여기서 산 옷, 거의 매일 입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가 다인 거? 그거 코튼 온에서 $15에 산 거."
"너 진짜 그것만 주구장창 입더라? 근데 너랑 잘 어울려. 살도 빠져서 아무 옷이나 걸쳐도 잘 어울리고."
"응 그 티셔츠 그래서 내가 두 장 샀잖아. 혹시라도 너덜너덜 해지면 새로 입으려고. 후훗. 쇼핑에 드는 시간과 돈, 에너지를 안 쓰니까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생활비도 많이 안 들지 않아?"
"우리가 돈을 제대로 쓰고 있나 보다. 정확한 거래. 돈 버는데 들인 노력과 정확히 거래되는 가치."
"지금 내가 쓰는 돈은 경험을 쌓는데 쓰이고 있어,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결국 인생의 목적은 추억을 쌓는 거래. 살아있는 동안 돈 벌어 추억을 쌓는데 쓴다면 그게 진짜 부자가 아니고 뭐겠어?"
주이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흠칫 놀랐다. 스스로를 부자라 정의하고 있다니. 아까 민준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건 부자의 기준을 '돈'에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곳에서 불확실함이 주는 긴장감은 주이를 늘 깨어있게 만들었다. 기대할 것이 있는 삶.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처음인 삶이었다. 주이는 그 사실이 짜릿했다. 매일 새로운 만남과 하루를 기대하는 이곳의 삶이 선물과도 같았다. 이 선물 상자를 조심스럽게 여는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고 있었다. 주이는 언니와 서로가 느끼는 설렘을 나누다 보니 부자가 되는 종착역까지 가지 않더라도, 간이역에서 만나는 행복만으로 살아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연은 테이블 위 모형을 빨간색이 보이게 뒤집었다. 직원들은 테이블 위 빨간 모형을 보더니 더 이상 음식을 권하지 않고 지나쳤다. 그 모습을 본 주이가 주연에게 말했다.
"제니 말이야, 나 진짜 아르바이트생 잘 구한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좋은 아르바이트생 구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던데, 어쩜 그렇게 통통 튀는 아르바이생을 구한 거야? 언니가 아르바이트 할랬더니, 안 하길 잘했다."
"내가 운이 좋았지, 제니가 일손을 거들어주니까 매출도 엄청 오르고 그전보다 훨씬 편하고 재밌어."
"응, 너 지금 진짜 행복해 보여. 언니도 좋다."
주연은 동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시드니 전집의 좁은 매대에 서서 전을 부칠 때 허리도 아프고 기름에 잘 데곤 했지만 주이는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패디스마켓 일대와 수많은 인파, 특유의 냄새까지 좋았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충만함이 주이를 벅차게 했다. 세상에 없는 유일무이한 일, 시드니에서 전집을 차리고 말았다니. 주이는 6개월 동안 자신이 꿈을 꾼 게 아닌지 착각이 들었다. 가볍게 마신 맥주가 취기를 불러온 모양이다.
"한국에 혼자 있는 형부랑 우리 남편은 무슨 죄야?"
주이는 혼자만 행복한 것이 진혁에게 미안해졌다. 언니를 훔치듯 데려올 때 홀로 남겨진 형부는 남편과 비슷한 신세가 됐다. 아이로부터 강제 격리를 당한 아빠들도 아이들이 보고 싶을 것이다.
"안 그래도 제이가 보고 싶다고 형부도 언제 올 거냐고 자꾸 묻는다. 곧 비행기 표 알아보겠다고 했어."
"진짜? 하긴, 제이도 아빠 사랑이 많이 필요한 시기지,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고."
"너도 여기서 살 거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제부는 언제 들어오라고 안 해?"
"언제 대박 나냐고만 물어보지, 돈 많이 벌기 전까지는 오지 말라던데?"
"하하... 그럼 영원히 여기서 사는 거 아니야?"
"오, 어떻게 알았어? 그 말했다가 크게 혼났지 뭐."
이곳의 시간은 주이의 인생에서 다시없을 황홀한 시간이겠지만 그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참 아빠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성장기 아이들을 아빠 없는 이곳에 계속 묶어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아예 정착할 계획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적당한 때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잠깐 머무는 것과 정착해서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여기서 정착한다면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이질감에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띠리리리링..."
수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주말에, 그것도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아닌데, 뭔가 급한 용무가 있는 모양이었다.
"언니, 주말 잘 쉬고 있나요?"
"네, 아이들하고 달링하버에서 저녁 먹고 있어요. 즐거운 주말 보냈어요?"
"저는 새로 시작한 부동산 클래스가 반응이 좋아서 오늘 진짜 바쁜 하루를 보냈어요! 언니에게 빨리 전화하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이제야 숨 돌리고 전화하네요."
"새로 시작한 클래스라니, 이제 후배양성까지 하게 된 거예요? 와... 진짜 멋진데요?"
"겨우 열 명 밖에 안 되는 작은 클래스인걸요 뭘."
"아니, 열 명이나 되는 사람이 수지의 클래스를 들으러 귀한 시간을 낸 건데요. 시작이 반이다, 몰라요? 이런 과정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게 성공이죠. 너무 멋져요! 근데, 웬일로 주말에 연락을 다 하고,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언니에게 빨리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오늘 아침에 작은 아버지께 연락이 왔거든요. 곧 호주로 돌아오신대요. 작은 어머니 건강도 많이 좋아지셨고, 다음 달부터는 가게도 오픈하실 계획이래요. 아직 2주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시드니 전집 이전할 매물을 좀 알아볼까요? 전보다 임대료가 많이 오른 것 같지만 찾아보면 좋은 매물이 있을 거예요."
"어머... 잘.. 됐네요. 매물은, 그건 좀 생각해 볼게요."
"네, 언니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수요일까지 연락 주세요."
주이는 호주에서 원하는 만큼 충분히 추억을 쌓았다는 생각과, 이제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섞어 들었다. 그녀는 기약도 없이 이곳에 왔을 때 직감했다. 때가 되면 멈춰야 할 때를 알아차릴 거란 사실을. 주이의 마음속 미묘한 파동이 일고 있었다. 마침 수지의 연락을 받고 나서 그 느낌은 더욱 확실해졌다.
주이의 마음속에서 때가 되었음을 알려왔다.
“여보세요?”
“남편.....뭐 해?”
“응, 밥도 못 먹고 야근 중. 넌 어디야? 시끄러운데?”
“나… 달까지 못 가고 추락했어. 눈 떠보니 달링하버네? 흐흐흐...”
“주이 너, 술 마셨어?”
“시드니에 전집 차리고, 부자가 되겠다고 의기양양 떠났는데, 결국 제자리지 뭐야...”
“제자리라도 어디냐.”
“자기는 나한테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야?”
“너 좀 많이 취한 것 같다...”
“자기, 지금 나한테 이 말하고 싶지? 거 봐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맞지?”
“...”
"나도 내가 시드니에 가면 대박이 날 줄 알았어. 근데 자꾸 재밌는 일이 생기네? 대박은 안 나고..."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얼른 들어가서 자."
“왜 내 말에 자꾸 대꾸를 안 해? 그 말하고 싶잖아. 빨리 해 봐 나 들을 준비 됐으니까!”
달에 갔네, 못 갔네 하며 취기 섞인 술주정을 쏟아내는 주이에게, 저녁도 못 먹고 야근 중인 진혁은 한참의 침묵 뒤 입을 열었다.
"주이야. 고생했어, 얼른 들어와. 네가 거기서 성공하고 안 하고는 내 안중에도 없어. 솔직히 나, 너도 애들도 정말 많이 보고 싶어. 그러니까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