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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Mar 13. 2024

달까지 가자

Stella화법? 그게 뭔데요?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흙수저 여성 3인방의 아찔한 코인열차 탑승기로,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되어 가상화폐 가격이 치솟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환희가 차올라 흥분하며 읽었던 책이다. ‘달까지 가자’라는 제목은 가상화폐의 끝없는 상승을 염원함과 동시에 어디까지 상승하는지, 갈 때까지 가보겠다는 아슬아슬한 의미로 풀이된다.



시드니에 전집을 차린 지 6개월이 지났다. <갑(甲) 자기 사장님> 프로그램 방영 이후 나는 생각지도 못한 운명을 맞이했고 시드니 전집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최재수는 5화에 걸쳐 방영된 예능프로그램에서 많은 클로버를 받은 덕분에 새로 시작하는 주말 드라마의 조연을 떡하니 맡게 됐고, 유재석이 사회를 맡아 진행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는 등 재기에 가뿐하게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최재수가 출연하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재기를 도운 일등 조력자로서 '시드니 전집 사장님 이야기'는 빠짐없이 거론됐다. 그는 나를 ‘따뜻한 면모의 사업가이자 상담가’로 묘사했다. 

<갑(甲) 자기 사장님> 제작진은 방송 일부에 최재수를 배려하는 내 움직임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편집했다. 내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멀찍이 서서 그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 행여 손이 델까 봐 촬영 중간 매대 주위를 정돈하는 모습 등 세심한 배려의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아 편집했다. 내가 그를 배려하는 장면만 모아놓은 영상을 보고 남편이 어이없어하며 "자기 혹시 최재수한테 사심 있는 거 아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그렇잖아도 여지를 보이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던 남편이 최재수가 나에게 사심이 있었던 사실을 안다면 부부 사이에 금이 가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최재수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모아 편집한 영상이었다. 최재수가 나에게 사심이 있었던 것을 시청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영상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손님을 응대할 때 한 걸음 물러나 나를 바라보는 진지한 표정, 손이 데었을 때 야단법석하며 구급함을 찾는 모습. 자잘한 실수는 적당히 눈감고 영업 중간에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척하며 패디스마켓에 들러 좋아하는 과일과 커피를 사 오는 모습 등 달달한 장면을 연출했다. 편집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5일간 촬영한 영상을 의도에 따라 편집한 제작진들이 흡사 마술사처럼 느껴졌다. 멜로드라마에 캐스팅되도록 최재수의 로맨틱한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민간인인 나를 간접적으로 이용한 전략인 것 같았다.

내가 젊을 때 그의 팬이었다는 사실과, 힘든 시간을 보낸 최재수를 변함없이 지지하는 행동에 감동한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시드니전집의 SNS팔로워 수는 불과 3주 만에 900명에서 5만 명을 넘어섰다. 시드니 전집 피드 아래로 수많은 댓글이 달렸고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응원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하나하나 겸손히 댓글을 달고 답신을 보내느라 주말 내내 휴대폰을 달고 살아야 했다.

최재수가 하는 말에 진심으로 대하는 내 리액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장인 내 이름을 따 <Stella화법>이라고 이름까지 붙여 자막으로 올라왔다. 진심을 담아 경청하고 응원했던 것인데, 사투리 억양이 섞인 내 말투가 제작진의 눈에 띈 모양이다. 이를테면 최재수가 "제가 솔직히 그때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거든요."라고 이야기할 때 내가 "죽고 싶죠, 근께요..그런 상황에 죽고 싶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어요."라고 답하는 장면이 그랬다. 힘든 시기를 보낸 경험을 말하며 울컥할 때 "힘내세요." 같은 포장된 응원보다, 함께 눈물을 글썽여주던 내 반응이 최재수에게 큰 위로가 됐다고 한다. 또 최재수가 “쿠팡맨이라도 해야 입에 풀칠은 할 것 같은데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더워도 마스크를 썼어요“라고 어두운 표정을 지을 때 나는 ”아니 왜, 제일 잘 생긴 쿠팡맨이 됐으니 쿠팡에 인센티브 요구하셔야죠, 마스크가 왠말?“이라고 응수하며 그가 웃게 만들었다.

급기야 프로그램 중간에는 전문가가 말하는 공감의 심리학 이론까지 거론하며 내 대화법을 추켜세웠다. 5화 마지막 인터뷰 장면에서 최재수는 나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고 마음의 큰 위로를 받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최근 몇 년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털어놓으면서 말이다. 제작진이 만들어 낸 <Stella 화법> 프레임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좀 부끄럽다...TV프로그램은 참 별것 아닌 걸로 유행을 만드네. 언니야 그치?“

“네가 평소에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스텔라화법? 그건 좀 억지스럽긴 하다. 하지만 어쨌거나 너에겐 잘 된 일이지. 내 동생이 TV스타가 됐잖아!“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유명해져서 부캐(평소의 내가 아닌 게임이나 모임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캐릭터, 성향)가 생긴 것 같아. 본캐(원래의 내 캐릭터, 성향)가 들키면 무지 창피할 텐데... 아휴... “

“네 본캐가 어때서? 난 어딜 가도 늘 내 동생 자랑하는걸? 내 동생 장점을 알아봐 준 제작진에게 감사해야지. 근데 이참에 네 장점을 적극적으로 살려보는 건 어때? 유튜브를 한다거나 책을 써보는 건?“

“나한테 그런 능력이 어딨어, 그런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내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몸에 안 맞는 꽉 끼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온 내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런 관심을 받게 된 일이 어색하고 낯설어서 잠도 오지 않았다.

호주를 방문하는 유튜버들은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시드니전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셀카봉을 들고 라이브방송을 하는 인플루언서도 있었다. 한국에 언제 돌아올 건지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여기저기서 창업문의가 빗발쳤다. 오늘은 노스시드니와 맨리비치에 시드니 전집 체인점을 내고 싶다는 교포 한 분이 찾아와 나에게 상당한 금액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창업의지를 밝혔다. 나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대답을 미뤘지만 남편은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며 서둘러 2호점, 3호점을 내라고 부추겼다.

전만 부치던 나에게 여러 방법으로 사업제안이 들어와 행복한 고민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이렇게 된 건 다 Jenny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부자가 되면 보답할 은인 목록에 Jenny 이름도 올렸다.

"사장님, 진짜 대단해요. 우리 이러다 대박 나서 *달까지 가는 거 아니에요?"

"다 Jenny덕분이야, 나 어떻게 이 빚을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에이, 아니에요 사장님, 사장님 덕분에 제 유튜브도 구독자 수가 십만 명 달성을 앞두고 있는걸요!"

Jenny는 방송 전 구독자 수가 90명에서 방송 후 9만명으로 늘어 당당히 인플루언서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Jenny는 시드니 전집에서 일어나는 재밌는 에피소드를 각색해 올렸다. 맛있게 전 부치는 비법도 짧게 편집해 올렸고, 손님과 대화 나누는 장면이나 장보러 가는 시간도 생생하게 영상으로 담았다. 크리에이터가 꿈이라는 Jenny의 통통 튀는 편집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갑(甲) 자기 사장님> 촬영 비하인드 영상은 '좋아요'가 무려 100만에 가까웠다. Jenny 덕분에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오고 싶다는 구독자가 많이 늘었다. 나는 Jenny에게 이 정도면 유학원을 차려도 잘 될 것 같다고 했지만 그녀는 틈틈이 라방(라이브방송)도 진행하고 맞춤형 상담도 하면서 먼저 경험을 쌓고 싶다고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기회를 이용해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는 오랜 꿈에 가까워졌다. 방송이 나가고 몇 주만에 사업자와 고용인이 이렇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이한 사람이 또 있을까. 갑작스러운 이 기쁨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런데 재밌는 건 당장 내 손에 쥐어진 돈이 많아진 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여전히 소고기에 밀가루를 묻혀 육전을 부치고 있고 Jenny는 계란을 풀고 밀가루를 채에 털고 있다. 하루에 부칠 수 있는 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매출이 더 늘기도 힘들었다. 유일하게 달라진 것이라곤 둘 다 신이 났다는 것이다. 전을 부치는 내 손놀림이 가벼워졌고 Jenny는 계란을 풀며 콧노래를 불렀다. 기분 좋은 일은 구독자 수와 함께 매일 매일 늘어났다. 처음에 했던 부자가 되는 상상에 이런 그림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꼭 부자의 문턱 앞에 서있는 사람들 같았다. 당장 달라진 것은 없는데 즐거운 상상으로 행복한 내가 가끔은 불안하기도 했다.

연이은 사건들로 들뜬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결정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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