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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Mar 09. 2024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해

전은 안 부쳐도 됩니다.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주이의 질문에 제니의 얼굴은 홍당무가 됐다. 급기야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주이는 제니가 떨고 있음을 느끼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기억해 냈다. 외국인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보다 같은 한국인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 단수 주어에 따라오는 동사 뒤에 's'는 붙였는지, 이 단어에 정관사 'The'를 붙이는 게 맞는지... 적절한 단어 선택과 정확한 발음도 버거운데, 듣는 사람의 눈치까지 보게 된다. 하지만 주이는 매서운 사장의 시선이 아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니가 더듬더듬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작하자. 주이도 17년 전 어느 날이 떠올랐다.


스물셋의 주이가 난생처음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발 디뎠을 때, 숙소가 있던 시티에서는 꽤 멀리 떨어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는 한국이 아닌 외국의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게 생애 첫 아르바이트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한국에서는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주이는 일하는 도중 아는 사람을 만나면 부끄러울 것 같아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테고, 회화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 것이기에 용기를 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주방보조 및 웨이트리스 구인광고를 보고 카페에 면접을 보러 갔다. 카페의 여사장 수진은 주이에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첫 질문을 했다.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여기는 현지인 손님이 대부분이라 영어를 못하면 곤란해요."


당시 주이는 영어 실력을 보여주기에 앞서 다니던 어학원에서 자신이 Upper Intermediate 레벨이라고 소개했다. 총 6단계의 레벨 중 5단계에 해당하는 상위 레벨이었다. 하지만 수진에게 아르바이트생의 어학원 레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이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알고 싶어 했고,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 보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심장이 얼어붙었던 그날의 긴장과 떨림은 17년이 지난 후에도 주이의 심장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진은 더듬더듬 자기소개를 마친 주이에게 먼 거리의 카페를 매일 출퇴근할 수 있겠느냐 걱정스럽게 물은 뒤 그 자리에서 채용을 결정했다.

Gordon Cafe에서 일했던 순간은 주이의 인생에 섬 하나를 차지했다. 아르바이트 복지 혜택으로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플랫화이트와 고메 샌드위치를 매일 먹을 수 있었고, 각종 토스트를 비롯한 브런치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손님이 떠난 테이블을 정리하고 음식을 서빙하며 현지 손님들과 나눴던 스몰토크는 주이의 영어실력을 일취월장하게 만들어 줬고, 손님이 없는 시간 장 보러 갈 때 마음껏 구경했던 아기자기한 동네 풍경은 타국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아이리버 이어폰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았던 출퇴근 길 지하철 풍경은 떠올리기만 해도 그리움에 주이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타국에서 부모님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사장님 부부. 두 분의 근황이 궁금해서 주이는 일부러 카페를 찾아갔지만 카페가 있던 자리에는 초밥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아쉬운 대로 초밥식당으로 들어가 자신이 샌드위치를 쌌던 위치를 가늠하고 앉아 초밥을 시켜 먹으며 눈물을 훔쳤다. 

'어디에 계실까? 건강하실까? 호주에 계시겠지? 아직도 스물셋의 나를 기억해 주실까?'


시드니전집에 면접을 보러 온 제니는 워킹홀리데이로 시드니에 온 지 3개월이 됐고, 어학원 과정이 끝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라 했다. 공교롭게도 주이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가 스물셋이었다. 그런 공통점 때문이었는지, 주이는 처음으로 면접을 보러 온 제니에게 익숙한 친밀감을 느꼈다. 어리숙했던 그 시절 주이와는 달리, 건강하고 탄탄한 몸매에 개성 있는 옷차림, 시원시원한 눈코입을 가진 제니에게 주이는 금세 호감을 느꼈다. 영어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한 것 같으니 일하면서 더 배우면 될 테고, 중요한 건 손재주가 있느냐였다. 주이의 빠른 손놀림에 박자를 맞추려면 손이 빠르고 행동이 굼뜨지 않아야 했다.


"손은 좀 빠른 편인가요?"

"네, 저 진짜 손 빨라요! 저희 집이 종갓집이라 일 년에 제사를 10번도 더 지내거든요."

"정말요? 아니, 일 년에 제사를 10번도 더 지내는 집이 아직도 있단 말이에요? 어휴, 나라면 전 냄새도 맡기 싫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여기 면접을 보러 올 생각을 한거죠?“

“맞아요. 솔직히 초등학생 때부터 전 부치는 데에는 이골이 났어요,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왔을 때 제사 안 지내도 된다고 속으로 만세를 불렀거든요? 그런데 구인광고에서 시드니전집을 본 순간, 아... 이건 운명인가 싶더라고요...”


제니의 말을 들은 주이의 눈이 호기심에 반짝거렸다.


“그래서요?”

“저는 여기 차이나타운 뒤 Regis타워에서 룸셰어를 하고 있어요. 시드니 전집이 숙소랑 위치도 가깝고 딱 제가 원하는 시간대에 구인광고가 났더라고요. 구인광고에는 제가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고 쓰여있어서요. 그래서 면접을 보러 온 거예요"


육전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면서 주이에게는 성가신 일들이 그만큼 늘어났다. 계란물을 입혀 부치는 전이기 때문에 팬 위에는 성가신 계란 부스러기들이 생겨났고, 밀가루를 채에 곱게 거르는 일, 계란이 뭉치지 않게 잘 푸는 일과 같은 손이 가는 일이 그만큼 늘었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미리 해두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손님이 많아질 때 주이의 마음이 다급해지곤 했다. 허드렛일만 거들어줘도 시간에 쫓기는 마음을 덜고 편안한 마음으로 전을 부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육전을 사기 위해 몰려든 손님으로 하염없이 늘어선 긴 줄을 바라보다 결국 손을 데고 말았다. 결심을 내려야 했다.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해.'


그전까지만 해도 주이는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생각한 것을 척척 알아서 해 주는 사람 말이다.

 '누구를 가르치느니 그냥 내가 해버리고 말지, 사람 하나 잘못 뽑으면 걱정거리만 늘 거야.'

일을 시키려고 사람을 뽑았다가 오히려 아르바이트를 모시고 일한다는 사장의 이야기를 주위에서 종종 들었다. 주이는 사업도 처음이지만 누군가를 고용해 본 경험이 전무했다. 결국 주위에 물어볼만한 사람을 찾다가 한인 정육점 사장인 현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현수네 가게에 갈 때마다 뒤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을 본 기억이 났다.


"사장님. 사장님은 아르바이트생을 어떻게 구하셨어요?"

"아... 지금 있는 친구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저도 사람 구하는데 애 좀 먹었습니다."

"왜요? 아무래도 정육점에서 일하려면 건장한 청년이어야 할 것 같은데요?"

"맞아요, 저희가 손님한테 고기만 썰어서 내는 게 아니거든요, 처음엔 '성실하고 건장한 청년이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구인광고에 냈더니 죄다 자기가 성실하고 건장하다고 찾아오더라고요. 거기선 옥석을 가리기 힘들었죠."

"성실한 사람이 자기 입으로 성실하다고 하진 않겠죠, 하하..."

"맞아요. 그래서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구인광고에 정육점에서 할 일을 좀 구체적으로 써서 올렸어요. 고기 포장, 배달, 손질 등등... 힘든 일처럼 보이게 써 놓고 보수를 두둑하게 주겠다고 올리니, 그 일을 잘할만한 사람이 지원을 하긴 하더라고요."


한인정육점 사장님의 조언을 들은 주이는 제대로 일할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위해 홈페이지 구인광고에 '시드니 전집 아르바이트생 업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패디스마켓 옆 시드니전집에서 보조업무를 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을 구합니다."

1. 대기손님 응대(주문받기, 번호표 배부, 포장 등)

2. 재료준비(계란 풀기, 밀가루 채에 털기 등)

3. 기타: 정리정돈, 심부름 등

※ 전은 안 부쳐도 됨.

*면접 시간: 오후 3시 방문 요망


주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작성한 구인광고를 올린 뒤 3일 동안은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계란이나 풀고 밀가루나 채에 거르려고 시드니까지 온 건 아니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베이커리나 카페 알바를 선호한다는 말을 듣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많이 와야 면접을 보면서 옥석을 가릴 수 있을 텐데, 주이는 지원자가 없어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 계란부스러기로 지저분해진 팬을 키친타월로 닦아내면서 주이는 구인광고를 다시 고쳐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아르바이트생 뽑는 시드니 전집이 여기가 맞죠?"


폐점 10분을 남겨놓고 면접을 보고 싶다고 찾아온 여자는 10분 동안 가게의 빈 공간에 점잖게 앉아 폐점을 기다렸다. 3시가 되어 남은 전을 포장하고 매대를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소리 없이 일어나 기름 젖은 키친타월과 계란껍데기 치우는 일을 거들고 물티슈로 팬 주위 튄 기름을 닦았다. 기름 닦은 물티슈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바닥에 조금씩 널려있는 부스러기까지 야무지게 훔친 뒤 쓰레기통에 버렸다. 주이가 괜찮다고 했지만, 쓰레기도 버리고 와 줬다. 주이는 이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말 센스도 좋고 성실해 보이는 제니는 면접을 보러 온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었다. 주이는 Gordon Cafe의 사장님처럼 면접에서 몇 마디를 나눈 뒤, 그 자리에서 채용을 결정했다. 더 괜찮은 사람이 올 거라 기대하며 시간을 끄는 건 소모적이라 생각했다. 첫 만남에서 특별히 싫은 구석이 보이지 않으면 일단 채용하고 보는 것이다. (주이는 생애 첫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남편이 됐다.) 평소 물티슈를 한 번만 쓰고 버리는 걸 아까워하던 주이는 제니가 물티슈로 기름을 닦고 바닥까지 훔치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나중에 주이가 제니에게 "물티슈 재활용하는 거 보고 반해서 채용한 거 알아요?"라고 말했을 때 제니는 한 번 쓴 물티슈로 신발도 닦고, 창틀도 닦고, 묵은 먼지를 닦으면 얼마나 좋은지를 열과 성을 다해 이야기했다. 주이는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제니와 이런 대화를 큰 어려움 없이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은 시킨 일 외에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큰 역할을 했다. 그중 제일은 전을 부칠 때마다 자꾸 말을 걸어 주이의 손을 데게 했던 리사의 수다를 소화해 준 것이다. 영어실력이 느는 것 같다고 오히려 리사를 기다리기까지 했다. 헨리를 비롯한 단골손님 예약도 SNS 메시지를 통해 받았다. 미리 주문한 손님은 기다릴 필요 없이 약속한 시간에 전을 받아갈 수 있었다. 서서 먹는 손님들에게 물티슈를 챙기고, 손코팅지를 구해 와 튼튼한 번호표를 제작했다. 주이가 전을 부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대기 손님들을 안내했다.


"사장님! 제가 어제 차이나타운에서 이걸 구했어요!"


막 출근한 제니는 가방에서 실리콘 스패너를 꺼냈다. 스패너는 팬 구석과 바깥으로 계란 부스러기를 야무지게 밀어냈다.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주말에 마켓에 갔다가 빠에야 만드는 아저씨가 쓰는 거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주말에 마켓 구경까지 가서 일 생각 한 거예요?"

"키친타월로 계란 부스러기 닦으니까 아까운 기름까지 닦이고, 쓰레기도 많이 생기는 것 같아서 싫었거든요."

"제니는 진짜 알뜰하다. 나도 그 생각은 했지만 대안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오늘 주급 받는 날이죠? 내가 스패너 값까지 챙겨 줄게요."

"스패너는 $15에요!"

"지난번에 번호표 만들 때 재료값도 청구하세요."

"그것도 한 $20쯤 됐던 것 같은데... 제가 영수증 확인하고 말씀드릴게요."

"그럼 수고비까지 $50 줄게요."

"아, 안 그러셔도 돼요. 잠시만요, 제가 영수증 보여드릴게요. 가위랑 손코팅지까지 $19.5에요."


제니의 대답에 주이는 짐짓 놀랐다. 돈을 더 챙겨주겠다고 하면 냉큼 받아야지 오히려 정확하게 하는 게 맞다며 영수증을 보여주는 모습에 신뢰가 급상승했다. 이런 모습은 $50을 주려다 $100을 주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아닌가. 주이는 세심하게 전집의 틈을 메워주는 제니가 기특하고 고마웠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Jenny가 일한 지 2주쯤 지났을 때, 그날따라 일찍 도착한 제니는 전을 열심히 부치는 주이의 눈치를 힐긋 살피더니 휴대전화를 들고 주이쪽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저 부탁드릴 게 하나 있는데요."

"뭔데요?"

"제가 일하는 모습을 짬짬이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해도 될까요?"

"일하는 시간에 영상을 찍겠다고요? 흠..."

"절대,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게 할게요."

"일하는데 사진 찍고 영상 찍는 게 어떻게 방해가 안 되죠?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네..."


갑작스러운 제니의 요청에 주이는 정색을 했다. 제니는 시무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계란물을 풀고 재료를 준비했다. 두 사람 사이에 한참 동안 냉기가 흘렀다. 그간 봐온 모습과 달리 삐친듯한 제니의 표정이 주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주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업무시간에 영상을 찍으려는 이유가 있어요?"

"네, 제가 요즘 같은 방 쓰는 언니랑 영어공부 열심히 하는 중인데요, 실제로 영어로 대화 나누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오면 언니가 피드백을 주겠다고 해서요. 사장님, 장사하는데 절대 방해는 안 되게 할게요. 안... 될까요?"


급기야 비음 섞인 애교까지 부리며 조르는 제니를 더 이상 거절하긴 힘들었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이 업무시간에 사진과 영상을 '대놓고' 찍는 게 탐탁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 더 되물은 이상 주이는 방해 안 되게 하겠다는 제니의 말을 조건부 믿어보기로 했다. 방해가 되는 순간이 오면 "거 봐요. 영상 찍느라 이런 실수가 생겼잖아요."라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알겠어요. 그럼 붐비는 점심시간은 빼고요, 그리고 만약 조금이라도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내가 말할게요. 그땐 서운해하지 않기예요?"

"네! 사장님, 고맙습니다!"


제니는 주이가 허락할 것을 예상했다는 듯 미리 준비한 삼각대를 꺼내 매대 한쪽에 세웠다. 자신이 주문받는 모습이 영상에 담기도록 카메라의 위치를 잡았다. 주이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영상에 담길 자신의 목소리가 걱정 돼 대화를 나눌 때 실속을 차리게 됐다. 혹여 무의식 중에 갑질하는 사장님처럼 말하면 어쩌나 걱정돼 내뱉는 말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골랐다. 처음에는 신경이 좀 쓰였지만 하루 이틀 적응하고 나니 촬영을 핑계로 말을 가려하는 게 오히려 좋은 일이라는 결론이 섰다. 게다가 한가한 시간대에만 촬영을 허락했으니 영업에도 큰 지장은 없었다. 


"제니는 꿈이 뭐예요?"


주이는 야무지게 계란을 풀고 있는 제니를 향해 다정하게 물었다. 


"아... 제 꿈은 유튜버예요. 제가 유튜브 채널을 하나 운영하고 있거든요. 워홀러(워킹홀리데이를 온 사람의 줄임말) 일상을 브이로그로 기록하는 중인데요. 아직은 구독자가 50명이 채 안 돼요."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유튜버라니, 세상이 진짜 많이 바뀌긴 했네요. 전 뭐 요리사나, 개발자... 그런 답이 나올 줄 알았죠?"

"어릴 적 꿈은 선생님이었는데, 그건 저희 부모님이 학원 선생님이어서 엄마가 정해주신 거고요. 사실 워킹홀리데이 오겠다고 작정한 것도 브이로그 찍고 유튜버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부모님께 말씀은 못 드렸지만요..."

"영상 많아요? 나도 구독해서 봐야겠다."

"거의 매일 올려서 영상은 많은데, 사장님께 보여드리긴 좀 부끄러워요. 히히... 실은 그것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아요. 매일 영상을 올리고는 있는데 구독자가 좀처럼 늘지를 않아요. 계속 이렇게 해야 하나 답답해요."

"매일 올리고는 있는데 구독자가 안 는다... 그럼 컨셉을 좀 바꿔 봐요."

"어떻게요?"

"시드니 워홀러가 매일 올리는 일상이 재밌다면 구독자가 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같은 걸 계속하는데 좋아지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꿔야죠. 아, 제니 그거 다 했으면 포장지랑 키친타월 좀 꺼내 줄래요?"

"아, 네네..."


사담이 길어지지 않도록 말을 끊으며 제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그녀의 귓가에 살아남기를 바랐다. 그녀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변화를 찾고자 방법을 바꿔 본 것이 시드니전집이 아니던가. 시드니전집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면 제니에게 그럴듯한 성공신화를 들려줄 수 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주이는 변화를 준 자신의 인생이 결코 오답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키지 않은 일을 했을 때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이건 아니야.'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시드니전집을 차린 뒤로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시드니 전집에 돕는 사람이 한 명 더해지니 주이가 전을 부치는 속도가 빨라졌다. 전집 매출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주이는 전보다 전 부치는 일이 수월하다고 느꼈다. 또 제니가 예약주문을 받아 주면서 영업 전후에도 전을 조금 더 부칠 수 있었다. 전을 팔 수 있는 시간과 수요가 늘어났다. 제니에게 주는 시급 $28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느꼈고, 수고한 만큼 인센티브도 챙겨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니와 함께 일한 지 어느덧 2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전보다 더 자주 영상을 찍었지만 이제 주이는 그런 제니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한 번은 제니의 유튜브를 보고 시드니 전집을 찾았다는 손님도 있었고, 촬영 덕분에 그녀의 영어실력도 몰라보게 늘었다. 금요일 오후, 주이는 봉투에 현금을 담아 Jenny에게 내밀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이건 인센티브예요.”


깜짝 놀라며 봉투 안의 금액을 확인한 Jenny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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