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 | 마크 트웨인 | 문예출판사
경고문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자는 기소한다.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자는 추방한다.
여기에서 이야기 줄거리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자는 총살한다.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바로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한다. 그것은 자유와 인권, 기회와 같은 의미를 담은 미국의 상징이다.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만들어진 1884년, 그 조각상이 상징하는 미국의 가치들은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때마침 세상에 나온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그 반증일 수 있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소년과 짐승 같은 삶을 사는 노예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시는 16대 대통령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지 21년이나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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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1876)의 후속 격인 소설이다. 하지만 톰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치기어린 소년들이 벌이는 울타리 안에서의 모험이라면, 허클베리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미시시피 강과 그 부근 마을 곳곳에서 생사를 오가는 모험이라 할 수 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잭슨 섬에 두 사람이 피신했다. 한 명은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도망친 허클베리 (이하 헉), 다른 한 사람은 곧 팔려 갈 운명을 미리 알게 된 노예, 짐이다. 교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데다 흡연과 음주에 능한 열세 살 소년 헉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짐을 돕기로 한다. 둘은 각자가 원하는 ‘자유’와 함께 미시시피 강을 떠내려 온 뗏목에 오른다. 흑인을 실은 뗏목은 노예에 비교적 너그러운 북부로 떠나야했지만, 짐의 가족이 있는 고향, 카이로(일리노이주)로 향했다. 하지만 폭풍을 만나 카이로를 지나치고, 그들은 계획과 달리 계속해서 남부로 떠내려간다. 과연 두 모험가는 그토록 원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그 결과만큼이나 의미 있는 것이 천방지축 소년과 인간의 탈을 쓴 노예의 시선으로 본 미국 남부의 현실이다. 특히 말도 안 되는 살인을 벌이고, 어이없는 사기 행각을 일삼는 어른들 사이에서 헉이 갖가지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세상 모든 아이러니를 관통하는 느낌이 든다.
후안무치인데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곤 없었던 헉의 변화도 놀랍다.
(사기꾼들의 행각을 보며) “인간이 인간임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 265쪽
(자유 대신 톰을 선택한) “짐의 속마음이 이렇게 흰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444쪽
그간 신사의 품격이라면 질색했던 그가 뗏목 모험을 통해 인간의 ‘양심’과 ‘평등’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 시절 학교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바로 그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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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 가까운 분량의 이 뗏목 모험은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의 사회상을 증언하는, 역사 소설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 문학의 뿌리 쪽을 담당하는 작가, 마크 트웨인 특유의 익살과 풍자가 잘 녹아든 세계문학의 수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내가 이 모험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서정성이 극대화 된 장면이다. 아마 헉과 짐도 그들의 모험을 추억함에 있어 가장 아름답게 남았을지 모를 그 부분을 옮겨본다.
뗏목 위에서 산다는 것은 멋진 것이었다. 위를 보면 온통 별들이 박힌 하늘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벌렁 누워 별들을 쳐다보며 저 별들이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그냥 생긴 것일까 하고 토론하곤 했다. 짐은 누군가가 만든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렇게 많은 별들을 만들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은 달이 별들을 낳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는 좀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반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개구리가 그렇게 많은 알을 낳는 것을 보았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달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는 떨어지는 별들을 보았고 꼬리에 긴 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것도 보곤 했다. 그런 별들은 상해서 둥지에서 내팽개쳐진 것들이라고 짐은 말했다.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