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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Jun 21. 2023

'~짜리' vs. '~어치' 일

초기 조직에서 인사가 중요하다 하지만 막상 중량급을 모시기도 어렵고 좋은 분을 모시고 싶다 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제시할 땐 주춤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중요해라며 대기업 출신을 리더로 영입하는데 보통은 대기업 특성상 정해진 직급기준 내 매니지먼트를 해본 경험 없고 인사에서도 일부 업무만 제한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대부분.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매니지먼트 경험은 해보기 전엔 잘 알 수 없고, 장기간 리더 육성 교육을 그리 받아도 막상 신임 리더가 되면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우왕좌왕한다. (관련 글: 신임리더의 실패가 흔한 이유)

그러나 당사자도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와 포지션을 가진다로 쉽게 흔들리고 회사도 그래도 저 정도 데리고 오려면 팀장 정도 드려야지 하며 서로의 니즈와 기대만으로도 근로'거래'가 성사된다. 


내가 첫 스타트업에서 1인 인사로 초기 조직에 합류했을 때 아직 작은 회사에서 이 정도 연봉을 받으며 어떻게 팀원을 뽑냐 했었다. 그래서 온갖 '짜치는' 일과 난생 처음 해보는 급여 작업 등을 사방에 도움 받아가며 꾸역꾸역 했었다. 뒤늦게 팀원을 채용하며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고, 이후 1인 인사로 스타트업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늘 강조한다. 이런 생각 말고 빨리 팀원 뽑으시라고. 


아직은 작은 스타트업에서 1억짜리 인사담당자를 뽑았다 치자. 

회사 입장에서는 1억짜리 인재를 데리고 왔으면 1억짜리 가치의 일을 시켜야 한다. 물론 스타트업이라는 곳에서 마냥 고급진(?) 일만 할 수도 없지만 그 사람이 1억짜리 일을 못할 때 챌린지 해야 한다. 온갖 밑단 일을 하느라 정작 기대했던 일을 못하고 다른 일들에 치여 있다면 챌린지 해야 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내가 이 회사에서 이 정도 받으니 더 열심히, 이런 일까지, 많이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스스로 1억짜리 일을 하고 있는지, 그 효용을 회사에 내고 있는지를 늘상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든 회사든 자기가 보고 배운 내에서, 경험 내에서 생각하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직장 생활의 큰 그림과 체계를 경험하지 않고 창업하거나 대기업에서 리더급 자리가 아닌 이상은 이런 걸 직접 크게 보기 어렵다. 가끔 인재 추천 요청을 받으며 JD를 읽다 보면 회사의 성장만큼 채용의 기준은 높은데 정작 시키려는 일의 수준은 낮은 경우를 많이 본다. JD는 그럴싸하지만 실상은 아닌 경우는 더 많다. 


주의해야 하는 건 '1억짜리' 일을 시키고 있는가, '1억짜리' 일을 하고 있는가다. 그런데 많은 곳에서 '1억 원어치' 일을 한다. 3~4천 수준의 실무자들이 해야 할 일을 1억짜리 비싼 인재를 뽑아 3인 분을 시키고 하려는 거. 그러면 어차피 그는 기대한 수준의 일을 할 틈이 없어 그 일은 못한다. 이렇게 되면 1억 원어치 일을 하는 사람을 쓰는 건데 회사 입장에서는 그럴 바엔 3~4천 수준의 실무자를 서너 명 뽑아 일의 속도를 높이는 편이 훨씬 낫다. 


인사담당자가 마치 호랑이기름 마냥 만병통치약처럼 쓰려는 곳도 많다. 인사 업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얼마나 자잘하게 손이 가고 커뮤니케이션과 감정 사이에 끼어 소모되는지도 모른다. 면접장에 앉히는 데에까지 서류검토부터 현업 커뮤니케이션, 일정 어레인지 등 몇 단계의 프로세스를 거치는 지도, 5명을 뽑아도 수십, 수백 명의 이력서를 봐야 하는지 등. 그래서 인사가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아는 만큼, 들은 만큼 선에서 보이고 관심 갖는 일에만 집중한다. 


1억짜리 인사라면 일이 돌아갈 구조를 만들기 위해 그림을 짜고 어디를 보강하고 어디를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파악해 커뮤니케이션과 협의를 거치고 그에 맞게 채용하고 내보내는 일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하는 거다. 전체 조직과 개개인을 파악해 그에 맞게 변수를 가정하고 뭘 강화할지 어디를 지원할지 등을 먼저 제안하고 필요한 걸 추진하는 게 초기 조직 세팅에서 1억짜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조직문화니 가치니 실제 채용을 하고 평가를 하며 내보내는 과정에서 예외가 많아지는 것들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저런 걸 해야 직접적으로 1억짜리 일을 해 조직을 변화시키는 게 그의 효용가치다. 


어릴 적 우린 어떤 꿈을 꾸었나.

과학자, 대통령, 디자이너, 화가, 연예인 등..

어릴 적엔 수도 없이 장래희망이 바뀌고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불혹이 넘어서도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를 고민하곤 한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커가는 과정에서, 주변상황이나 주변인에 의해서 등으로 장래희망은 조정되고, 뭔가 정해져도 거기에 닿기 위한 방법들이 끊임없이 수정된다. 


초기 조직도 마찬가지다. 비전을 그리고 핵심가치를 강조하지만 필요에 따라 피봇도 과감히 하는 현실 속에서 뭘 하든 올바른 방향으로, 정당하게 승부하며 가겠다 정도의 변하지 않을 점 정도 찍고 시작해도 괜찮다. 그 안에서 계속 조정하고 수정해 가며 진화시켜 나가면 된다. 조직문화는 그 모든 과정이 쌓이며 단계단계의 모습일 뿐이지 그 자체가 비전이고 목표가 되는 건 생각해 볼 일이다. 


100만 원짜리 음식과 100만 원어치 음식은 다르다. 

1000만 원짜리 옷의 옷감이나 디테일이 다르고, 1000만 원어치 옷이 또 다르다. 

인재도 마찬가지다. 


* 비단 인사담당자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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