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이 되면 적금을 새롭게 넣는다. 대략 3년쯤 된 것 같다. 아이가 어릴 때는 캠핑을 자주 다녔던 우리 가족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캠핑이 쉽지 않아졌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들의 스케줄이 바빠지면서, 엄마가 1인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아빠의 일이 바빠지면서. 캠핑을 갈 수 없는 이유는 많았다. 각자 스스로 부여한 역할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주말에 시간 내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서울, 남해안, 서해안, 동해안. 어디든 갈 수 있으면 움직였다. 사실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내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짐을 풀고 챙기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희한하게도 나는 괜찮았다. 타고난 튼튼 체력(^^)인지, 일정을 조절해 캠핑이나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이런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진짜 체력 좋아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근데 피부는 좋아 보이네요..."
"대단해. 그렇게 바쁜데 여행 다니는 거 보면..."
독서와 글쓰기가 일상의 작은 on/off라면 여행은 좀 더 글로벌한 on/off이다. 글로벌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pc를 사용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off이다. 독서, 여행, 글쓰기. 나만의 어떤 기준 같은 것이다. 일상의 틈을 만들어주고,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잠시 되돌아볼 시간을 주는 것들이다.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쫓기듯 생활하는 게 아니라 같이 밥 먹고, 놀고, 걷고, 달릴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캠핑을 떠나는 횟수는 자연스럽게 줄었고,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나는 다른 방법을 찾기도 했다. 자주 갈 수 없다면, 짧고 굵게 기억에 남는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일 년에 한번 떠나는 해외 가족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행히 자신의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그 혜택을 누려 평일을 끼워 조금이라도 착한 가격에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해마다 겨울이면 여행을 떠난다. 올해도 스케줄을 조절했다. 아이의 시험이 끝나는 주말을 타깃으로 하여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는 우주의 힘을 빌렸다. 특별한 스케줄 없이 잘 다녀올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노력에도 마음을 다했다.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이너스 이자라는 소리에도 적금을 넣었고, 여권 만기로 인해 인천공항을 가는 일이 없도록 여권도 미리 준비했다.(작년에 여권 만기로 고생했던 일을 떠올리며). 한국에서 예약해서 갈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은 미리 예약했다. 그리고 평일을 활용한 여행 스케줄을 이용해서 떠났고 3박 4일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 가기 전에 며칠 동안 먹지를 못해 고생했는데, 여행이 체질인지 정말 잘 먹고, 잘 놀다가 왔다. 진짜 남편 말처럼 잘 먹고, 잘 뛰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뛰고, 잘 놀다가 왔다.
미세먼지 걱정 없이 크게 숨 쉬었던 곳이었다. 자연방파제가 만들어놓은 라군은 호수인지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마음을 담그고 생각을 식히는 시간이었다. 일에 대한 어떤 좋은 결심이나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다가 만들어내는 물결을 바라보면서, 자유롭게 오가는 물고기를 경이로운 한참 동안 쫓아다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행을 가기 전이나 여행을 다녀온 후,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완전히 다른 시간을 경험한 느낌, 다른 세계에 발을 담근 느낌이 어떤 좌표가 되어 나를 이끌어 나갈 뿐이다. 아이들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 첨벙거리며 함께 물속으로 뛰어드는 남편을 보는 것, 같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는 극적인 느낌. 온전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따뜻한 느낌. 이런 극적인 느낌이 내 삶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