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첫 등교를 했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by 윤슬작가

중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첫 등교를 했다. 4월이면 가겠지, 5월이면 가겠지, 5월 27일 드디어 오늘 첫 등교를 했다. 등교라는 말, 이제는 아주 특별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몇 번의 연기 끝에 이루어진 등교. 코로나는 일상을 바꿔놓았다기 보다 시간을 멈춰버리게 만든 것 같다. 겨울방학을 시작으로 5개월의 시간이 흐른 오늘, 3월 첫째 주의 어느 아침과 새롭게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끊어진 매듭을 가다듬어 조심스럽게 붙여나가는 기분이다.


어제저녁 집 가까운 곳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동네가 들썩했다. 기약 없이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생활 방역 차원의 등교가 시작되었다. 첫 등교를 준비하면서 불안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져 첫 등교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하지만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등교 준비를 했다. 오래전 중학교에 첫 입학했을 때처럼,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는 작년 3월에 그랬던 것처럼, 5월의 아침도 그러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새로움을 만나는 나름의 의식을 마쳤다. 만나지 못한 새로운 시간 앞에서 아이는 언제나 걱정보다 호기심을 선택했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등교 준비를 마친 아이와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확진자가 나오면서 오늘 등교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야"

"응... 알고 있어. 나는 갈 거야..."

"마스크는 두 개 챙겼어?"

"응... 챙겼어"

"하나는 좀 얇은 거 하고... 마스크 두 개 가져가..."

"선생님께서 KF 94 이상 되는 마스크하고 오라고 하셨어"

"손소독제 챙겼어?"

"당연히 챙겼지"


예전과는, 그러니까 코로나를 만나기 이전의 상황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단어가 식탁 위를 돌아다니고 있다. 환경은 무해했으며, 상황은 호의적이라는 가정하에서 전혀 궁금해하지도,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들이 이젠 주류가 되어버렸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예전에 최재천 교수님께서 박경리 작가님과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포럼에서인가 생태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박경리 작가님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원금은 그대로 두고, 이자만 사용해야 한다"라고. 이자만 잘 활용하고, 원금은 그대로 보전해서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이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그렇게 이해했었다. 코로나19는 마치 우리가 원금을 제대로 잘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준 것 같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지구를, 아니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기분이다. 이런저런 모습에도 반응이 별로 없으니 뭔가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느낀 지구의 반격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주 고3 등교에 이어 오늘부터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로 가기 시작했다. 확진자는 또 나올 것이고, 어디에서 시작되었느냐에 따라, 등교 방식은 변화든, 진화든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아이가 돌아와 전해줄 학교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고, 원금을 잘 보존할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얘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선택이, 어떤 행동이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조금 당황해할 일이 벌어질 수 있고, 조금 기분 좋아질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두 가지 상황에 대해 마음을 준비시켜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면서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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