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을 만들면 유행과 맞을 것 같은데'
'트렌드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런 주제로 책을 쓰면 좋을 것 같은데'
'나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저렇게 책을 내니, 사람들이 좋아하네'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을 기획하고, 완성하는 동안 나 역시 주변의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분명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다. 나도 모르게 온라인 서점을 둘러보면서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트렌드, 베스트셀러에 올라온 책을 살피게 된다. 보통 그럴 때의 마음은 내가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안의 것을 발현할 수 있느냐보다 무엇을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에 더 가까웠다. 그렇게 희한한 게, 한참 동안 그곳에서 서성거리다 보면 불안한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물론 약간의 부작용, 예를 들어 조급한 마음이 생겨났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짧은 순간, 내 안의 동력에 다시 불을 붙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몇 권의 책을 낸 사람이 주변에 여러 생겨났다. 적게는 1,2권에서 그 이상의 책을 완성했다. 글쓰기 수업 시간을 통해 완성한 분도 계시지만, 개별적으로 완성한 분도 더러 있다. 언젠간 그분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대해,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을 기획하고 있는지에 대해, 좋아요가 많이 붙은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의 피드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방법에 대해, 나의 피드에 반응이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 동안, 각자 고민한 흔적과 현재 시도하고 있는 노력과 경험을 이어나갔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면 몇 개의 선물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 줄 알았는데, 따라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것 같다는 얘기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결핍을 견디고, 불안을 마주하는 것에는 일가견이 난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 독백처럼 허공을 향해 고백하는 순간, 모든 사람의 얼굴에 일순간 화색이 돌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주변이 밝아졌다.
"그런데, 그거 있잖습니까. 글 쓰는 시간, 그 시간 동안의 몰입,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결과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게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내 안의 세계를 표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래도 이건 행운 아닐까요? 다만, 한 가지. 비교하는 마음이 문제라는 거죠. 다른 작가와 비교하고, 다른 작품과 비교하고, 다른 스타일과 비교하고. 어떻게 그 부분만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 제법 행복한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분의 말 한 글자 한 글자를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경탄의 미소를 머금고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표정의 사람까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 모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 가 될 수 있다면, ... 을 이룰 수 있다면, ... 이 좋아진다면... 없이 그냥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보통 글을 쓰는 사람들을 글쟁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그날, 글쟁이가 아니라 모험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하고, 백지를 채워나가는 사람. 찬란한 장소를 찾는 게 아니라 찬란한 순간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은 글쟁이가 아니라 모험가라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