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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아직 쓸 게 있어요?

by 윤슬작가

<best를 버리니 only가 보였다> 출간 소식을 전했을 때 반응이 예전과 완전히 달랐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 중에는 급기야 '글을 정말 쉽게 쓰는 것 같아요!'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의아했다가 이내 수긍이 갔다. <나의 비서는 다이어리입니다>를 출간한 것이 올 1월, 그리고 3월에 또다시 책이 나온다고 하니,의문스럽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꼬리표처럼 따라온 질문 하나.


"작가님, 아직 쓸 게 있어요?"


역시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번에 확신했다. 앞으로 매번 듣게 되지 않을까라는. 그런 날을 대비해서 뭔가 멋진, 그럴듯한 답변을 준비해둬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근사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비슷한 질문앞에서 똑같은 말을 앵무처럼 반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짜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게 사실이고, 팩트이다. 그래서 두눈을 조금만 크게 뜨고, 나의 행적을 뒤쫓는 사람이라면 '에게... 이렇게 시시한 거였어?'라고 말할 것 같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작가님, 아직 쓸 게 있어요?"

"네. 그러게요. 쓸 게 자꾸 보이네요. 그런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루에 한편, 1년이면 365개 가까운 글이 나와요. 주말을 뺀다고 하면 200개가 넘는 글이 만들어져요. 그 중에는 단순히 일상을 쓰는 것도 있지만, 처음부터 기획서 작성하고 초고를 쓴 것도 있거든요. 그렇게 먼저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려 반응을 살피고, 그 중에서 괜찮은 것을 선택해서 다듬어 책을 완성한다고 하면... 실은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죠"

"에... 그렇네요... 말은 맞는 것 같아요"

"그쵸? 그러니까요..."


보통 이쯤되면 더 이상의 질문이 불필요한 분위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이해가 끝난 것이다. 하지만 삶이 어디 머리로 살아지던가. 손길과 발길로 만들어가는 것이니, 이내 숨구멍을 찾은 것처럼 서둘러 다른 질문이 터져나온다.


"그런데, 매일 쓰는 거, 이게 힘든 것 같아요. 사실 쓸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이 또한 과거 몇 차례 만났던 질문이고, 수시로 만나는 질문이다. 그러니까 손에 지문도 생겼고, 발에 어느 정도의 굳은살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그 부분은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제일 잘 아는 주제에 대해 쓴다고 가정해보면 의외로 쉽게 풀려요. 내가 지닌 수많은 경험과 깨달음에 관한 것을 정리한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글감이 나오겠죠? 내가 맡았던 업무나 영역, 지속적으로 이어온 활동에 관한 것도 쓸 수 있겠죠. 또 관심이 있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게 있다면 논문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정리된 글을 쓸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것은 자기만의 일을 하거나 어떤 영역이 있는 사람들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음, 큰 이슈없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오늘은 어제와 달라요. 오늘은 어제의 반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오늘 하루 중에서도 새롭게 발견한 것, 깨달은 것, 느낀 것, 혹은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 다른 생각을 갖게 했던 사람, 불편한 감정을 들킨 에피소드, 고마움이 샘솟았던 순간... 누구나 이런 것들이 하나쯤은 있었을 것 같아요. 하다못해 진짜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나 미스터리한 행동에 대해서도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글쓰기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에 한편,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네. 그렇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


어느 지점에서 내가 물러날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지는 예상할 수는 없지만, 웬만해서는 잘 물러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적어도 글쓰기에 관련해서는 고집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날개라도 달렸는지 춤추듯 혀끝에서 날개짓을 하는데 사실 나도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다만 조금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도 좋은데, 그게 안 된다는 점이다. 너무 현실적이고 직설적이라고나 할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에는 성공했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것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best 또는 최고가 아닌 상태에서 뭔가를 논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뒷걸음치기에 바빴고, 어린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덤벼들 용기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best가 아니라서 뒷걸음치거나 용기가 부족하다고 나를 나무라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아주 굉장한 비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쓸게 있어서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쓰다보면 자꾸 쓸게 생겨난다는 것!"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요즘은 전에 없던 욕심이 생긴다.

이 비밀을 두고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이 비밀을 함께 살펴볼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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