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글을 읽다가 참 잘 썼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올 때가 있다. '잘 썼다'라는 것이 굉장히 추상적인 표현이라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상황에 따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기에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두 가지 정도는 간추리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바로 표현력과 전개 방식이다.
잘 쓴 글에는 리듬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완성 지점에 닿아있었다. 하나하나의 단어나 문장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아 서로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모습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부드러움으로, 어느 순간에는 단단한 바윗돌처럼 웅장함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읽는 사람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감정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희생이나 사명을 이끌어내는가 하면, 새로운 방향을 제안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풍부한 표현력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글에는 이처럼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 힘이 있다.
전개 방식 역시 다르지 않다. 글의 시작과 끝은 물론, 이탈자가 생기지 않도록 흥미 있는 이야기나 경험, 자료를 끊임없이 제시하여 종착지에 닿도록 유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산성이나 효율성만으로 접근해서도 안 되지만, 감성적인 코드를 잔뜩 채워 넣었다고 잘 쓴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흐름에 있어서는 논리적이고, 명확해야 하지만 전개에 있어서는 무중력 상태로 땅을 거닐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마치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글 밖에서 글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강렬한 첫 문장을 쓰는 행위나 요약이나 정리를 잘하는 마무리와 별개의 문제인 셈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연주를 하고 있다는 기분에 젖을 때가 있다. 곁에서 이야기하듯 조곤조곤 속삭이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급물살을 탄 것처럼 두려움이나 긴장감을 선사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변주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말이다. 표현력이든, 전개 방식이든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그럴 때면 특히 주의하는 게 있다. 바로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칫 방심하면 나도 모르게 감정에 취하거나 생각의 함정에 빠져 처음의 기획의도를 벗어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결말만큼은 보수적으로,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왜냐하면 이미 처음에 글을 쓸 때 방향은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감동이라면 감동, 기회라면 기회, 자극이라면 자극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작품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부여한 의미를 완성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도 상당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글을 쓰는가 하면, 몇 줄 완성하지 못한 현실의 벽 앞에서 밤을 하얗게 새우는 풍경도 적잖이 발견할 수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어려움이나 고통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글을 쓰는 즐거움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변에서 굳이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힘든 일 하지 말라고 말려도 포기하지 못한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알기에, 공감하기에 자꾸 몇 마디를 남기게 된다. 사실 표현력과 전개 방식의 중요성은 모두 알고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흔적을 남기는 것은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글쓰기로 변한 삶을 공유하고, 삶에게 빼앗긴 것들을 되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앞으로 탄생할 수많은 작품을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