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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Aug 13. 2019

독일은 강자에게만 사과했다

[오늘의 칼럼] 독일은 정말 반성하는 나라일까? - 이현우 기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oid=277&aid=0004517941&sid1=110&opinionType=todayColumns


베를린에 있을 때 친한 오빠가 cold war라는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엔 필트 트립이 있어서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 파크 같은 곳엘 가서 해설을 들었다. 오빠는 수업이 끝나고 우리를 그곳에 데려가 핵심적인 내용을 알려줬다. 그때 난 독일이 베를린 전역에 뿌려놓은 역사 반성에 감탄했다. 한 시대에 닥친 정치적 재난을 어떤 방식으로 반성할 수 있는가에 대해 배웠다. 그런데 그 넓은 지역에 걸친 반성이 강자에게만 국한된 사과였다.


독일이 사과했던 대상은 모두 강자다. 냉정시대의 승리자 미국과 서구 열강에게 깊은 반성을 전시했다.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에 앞서 자행된 인종학살과 식민통치에 대해서는 묵인했다. 과거 독일제국은 1904년부터 1907년까지 나미비아에서 10만명이 넘는 원주민을 학살했다. 침묵은 권력자의 특권이다. 서구 열강은 스스로가 식민통치의 가해자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미비아의 역사를 소거했다.  


당위성만으로 사과 받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릴 적 '우리는 폐전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사과받을 수 없었다'는 국사 선생님의 말이 앞뒤가 안 맞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식민지였는데 왜 사과 받지 못하는 건지 궁금했다. 그때의 나는 국가 간에도 진심 어린 사과가 있다고 믿을 만큼 순진했다. 힘의 논리로 사과하게끔 만드는 게 외교고 정치다. 한일관계에서 우리나라가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갖췄나 우려스럽다.  


PS. 베를린 장벽을 둘러 볼 때, 독일 평화운동가를 만났었다. 그는 한국엔 한번도 와본 적 없는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던 운동가였다. 다른 건 몰라도 독일에 있는 건축물들이 평화를 바라는 시민을 양성한 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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