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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Oct 20. 2019

시골 청년의 삶을 견디는 법

착한 사람이 어떻게 견디는 줄 아세요?


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저녁 9시, 전남 고흥

독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의 고백이었다. 늦은 저녁, 대패삼겹살을 한참 먹던 중 불쑥 꺼낸 한마디였다. 다른 사람이 아닌, 그가 말했기에 전해지는 울림이 달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로 알고 지낸 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착하고 바른 사람이다.


 고흥에서 나고 자란 그는 예의가 바르고 무엇보다 부모님을 소중히 여겼다. 한창 놀고 싶은 스무 살. 대학 대신 고향을 떠나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제조공장에서 긴 시간을 버텼다. 월급의 절반 이상은 늘 부모님 몫이었다. 누워계셔야만 하는 아버지와 홀로 가정을 지키며 일터에 나가시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매일 새벽 눈물을 흘렸다.


 시골 청년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배려한다는 행동이 화를 불렀다. 그의 순수함을 이용해 이익을 도모하는 이도 있었다. 한 번은 성실한 그를 놀려먹으려고 없는 죄를 뒤집어 누명을 씌우기도 했다. 억울함에 목이 터져라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다수의 발언은 여론이 되었고, 없는 사실이 팩트가 되었다. 짓지 않은 죄를 증명하는 일은 어려웠다. 우울증도 생겼다. 가슴이 답답했고, 매일이 지옥이었다.


 

 그는 결심했다. 독한 사람이 되자고. 그래도 되는 세상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갑자기 사람은 바뀔 수 없으니까. 노력해보았지만 서툴고 불편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한 번씩 전화 올 때면 걱정할까 봐 잘 지낸다고 말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알약 개수는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작년 5월, 업무 중 접촉사고가 발생해 요양차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두 달 뒤, 나를 만난 것이다.


 지금도 같은 마음일까?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올해 초엔 먹던 약도 끊었단다. 아직 사람을 만나는 데 두려울 때도 있지만 견딜만하다고 했다.


문득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초점 없는 눈빛과 알 수 없는 표정, 경직된 말투.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결 나아졌으니까. 그는 내게 물었다.


착한 사람이 어떻게 견디는 줄 아세요?


 아뇨, 잘 모르겠어요. 그는 잠시 주춤하더니 자세를 고쳐 앉고 말을 이었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이 있으면 견디겠더라고요. 혹시 그 한 사람이 나일까. 오랜만에 남자 앞에서 수줍어졌다. 얼굴이 붉어지는 나를 보며 눈치챘냐고 웃었다. 수줍어도 되는 상황이 기뻤다.


 두 번째 방법은 글쓰기를 말했다. 대신 타인에게 보이는 글이 아니라, 휴대폰 메모장에 매일 무언가를 끄적인다고 말했다. 맞춤법도 틀리고, 종종 스트레스받을 때나 쓰고 싶을 때 쓰는 글이라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기엔 쑥스럽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들어주는 한 사람이 생기고, 글을 쓰다 보니 얻게 된 자존감이라고 말했다. 슬픈 날도, 기쁜 날도 인생이라는 말과 함께.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의 삶에서 실종된 단어였던 자존감을 말하고 있는데.


 차분하게 말하는 그의 한마디가 계속 내 가슴을 건드렸다. 그의 삶은 흥미로웠다. 책 한 권을 읽는 듯한(정확하게는 딱 절반) 기분이었다. 계속 읽고 싶은 그런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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