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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May 10. 2020

나는 프로실패러였다

사람들은 내 실패담을 좋아했다. 아주, 많이.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어렸을 적부터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 쓰던 글 대부분은 일기나 편지 그리고 착실한 학교생활을 뽐내듯 이따금씩 교무실에 제출했던 반성문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빈종이 앞에서 머뭇거리며 방황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쓰는 게 왜 어렵다는 거지?” 좋은 문장이나 내용은 아니었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면 주저함이 없었다.    


서점도 자주 드나들었다. 대부분 로맨틱한 정서를 풍기는 소설이나 시였다. 다독가는 아니었지만 한번 가슴에 닿는 책은 자주, 오랜 시간 아껴가며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가슴이 쿵쾅거려서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은 날엔 독후감을 썼다. 평소 가까웠던 국어 선생님은 늘 0순위 독자였다. 다 읽고 나면 한결 같이 말하셨다. “솔직한 글이다. 더 노력하면, 특별할 것 같아.”    


스무 살 이후 나는 책 대신 사람을 분주히 읽었다. 어느 날, 평소 대화를 곧잘 나누던 선배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그것은 헤르만 헤세의 <청춘은 아름다워>였다. 집으로 돌아와 곧장 읽기 시작했다. 마음이 저릿했다. 뜨거워졌다. 같은 문장이 시선에 계속 맴돌았다. 흔들리고 불안했던 내게 위로하는 듯했다.     


"내 청춘의 찬란함을 믿는다.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을 내 청춘의 찬란함을 믿는다.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청춘이길. 조그만 감정에도 가슴 뛰는 청춘이길... 커다란 감정에도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청춘이길."

_헤르만 해세의 <청춘은 아름다워> 중에서     





쓰는 삶을 구체적으로 정한 때는 헌책방 ‘영록서점’에서였다

당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거듭 질문하고 번민하던 시기였다. 그때 발견한 한 권의 책, <기자로 산다는 것>. 먼지 자욱한 헌책방에서 새빨간 표지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읽고 나서야, 그간 막연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듯했다. “그래, 쓰는 삶을 살아가자. 그리고 기자가 되자.”    


호기롭게 결심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글쓰기와 기자로써의 공부를 어디서,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될지 몰랐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어떡하나? 맨땅에 헤딩하는 수밖에. 그날부터 매일 쓰기 시작했다. 신문도 언론사별로 분류해 열심히 읽었다. 간혹 좋아하는 작가나 기자의 글은 베껴 쓰기도 했다.  


그렇게 6년간 언론고시를 치렀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가 오갔다. 신문지면에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칼럼이 처음 기재되었던 날부터,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시사 라디오 방송 DJ를 3년간 맡기도 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수개월간 취재한 적도 있었다. 모든 과정의 최종 목표는 하나였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기사를 쓸 수 있는 언론사에 입사하는 것.


하지만 수차례 낙방으로 이어졌다. 마지막이란 각오로 준비했던 여섯 번째 시험까지 탈락되었을 때는, 숙인 고개를 좀처럼 들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평소 애정 하던 기자님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내가 쓴 이력서와 기사 여러 편을 첨부하며 피드백을 요구했다. "부족한 건 알지만,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좋을지 읽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답장 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은 간결했다.


글도, 마인드도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무언가가.....
좌절할 건 없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우.
힘내시오.
_시사IN 주진우 기자





나의 실패담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것은 하나의 힌트였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서른 하고도 네 살을 더 먹었다. 자주 아프고 흔들렸던 이십 대를 되돌아봤다. 여러 장면 중 가슴에 오래 맴도는 순간을 글로 썼다. 그때가 작년 8월이었다. 얼마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결코 특별하지 않은 내 글을 읽고 수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반응('꿈이 후회로 바뀔 때 사람은 늙는다.')을 보였다.


지극히 일상적인 보통의 나날을 기록한, 과거의 실패담이었다. 그런데 글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부터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숱하게 쌓여갔다. 심지어 대기업에서 함께 글을 써보자는 특별한 제안도 받았다. 또한,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중에서 인상 깊은 질문은 "특별함을 찾으셨나요?"였다.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까지 확신 어린 대답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힌트는 얻었다. 순간순간 살아가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승패의 여부를 떠나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글을 쓰는 재료이자 동력이 된다.


비록 직업으로써의 기자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나는 매일 읽고 쓴다. 기록하고 흔적을 남긴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담아  권의 책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전진하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자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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