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 오늘 예약한 이 00이라고 하는데요~"
"아~어서오세요^^ 레슨이 처음은 아니시죠?"
"네~ 연습장에서 프로님께 레슨을 3개월 받긴 했는데 스튜디오 레슨은 처음이네요~^^ 유튜브 잘 보며 도움받곤 했는데 직접 이렇게 뵈니 연예인 보는 것처럼 긴장되네요 하하.."
"하하 그런가요? 긴장 푸세요~ 저한테 오신 거 후회 없이 돌아가시게 할 자신 있습니다!!^^ 일단 한번 전체적으로 자세를 봐야 하니 한번 스윙 좀 해보실까요~?"
빨
역시 믿음직스러운 유튜버 유명 프로님... 믿음이 팍팍 간다... 온갖 화려한 장비와 말빨로 나의 문제점과 자세를 정확히 분석해 주시며 한 번의 레슨만으로도 뭔가 시원하게 해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팔을 당기시는 게 문제세요. 하지만 여러 가지로 자세 교정이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오버스윙되는 것도 있는데 이건 초기에 고쳐야지 안 그러면 습관처럼 고질병이 돼서 나중엔 수정되기가 힘들어요.."
역시 나의 선택이 옳았다... 오늘 한 번만의 레슨으로도 희열감을 느끼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직접 배우러 가니 유튜브에서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특급 비밀 자세까지 알려주셨다.
기분 좋게 5회권의 레슨을 등록하고 추후에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하며 레슨장을 나선다... 수정된 느낌을 유지하고자 바로 아파트 골프 연습장으로 가서 레슨 받은 자세를 연습한다.
역시 뭔가 공이 딱딱 잘 맞는 기분이 든다... 거리도 조금 좋아지는 것 같고 아주 흡족스럽다.
다른 사람들을 힐끗힐끗 곁눈질해 봤는데 자세가 요상한 사람을 볼 때면 레슨도 안 받고 치나 왠지 입가가 나도 모르게 씰룩거린다.
기분 좋게 집에 들어왔는데 연습도 잘 안 하던 아내가 웬일로 주방 매트를 거실에 갖다 놓고 빈 스윙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레슨 잘했어? 어땠어?"
"아니~ 그게 아니고 45도에서 꺾어야 한다니까~ 그리고 백스윙할 때도 귀 옆까지 올라온다는 느낌으로... 블라블라~~~~~~ 그렇지!! "
"맞긴 뭐가 맞아!!~ 전에 강사님이 가르쳐준 대로 연습하고 있는 건데 자꾸 지적하니까 헷갈리기만 하잖아~ 갔다 오더니 아주 프로선수 다 됐네~?"
"잘 가르쳐줘도 짜증이야~ 그래.. 배운 대로 해~ 아~ 근데 오늘 유튜버 프로 역시 잘 가르치더라... 핵심을 정확하게 알고 자세를 새롭게 알려주는데 역시 달라... 이래서 가르치는 프로랑 궁합이 잘 맞아야 돼~"
"잘 됐네~ 거기서 열심히 배워서 잘 치면 나도 나중에 좀 잘 가르쳐줘 봐~ 레슨비나 좀 아껴보자~ 아니다 부부끼리 가르쳐줘봤자 싸움이나 나지 뭐. 쳇!~"
투닥투닥 해도 골프를 같이 시작하니 돈은 점점 많이 들지만, 서로 할 이야기도 많아지고 대화도 통화고, 공감대도 형성되다 보니 썩 나쁜 선택을 하진 않은 것 같다..
골프에 푹 빠진 이 부장은 평일엔 매일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주말에 스튜디오 레슨 가는 날만 기다렸다. 2번째 레슨도 기분 좋게 받고, 3번째 레슨도 흡족하게 받은듯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기분 탓인 건지 뭔지 연습장에서 연습을 할 때 슬슬 불편한 느낌이 든다.
'분명 잘 배워서 고쳐지는 것 같았는데 왜 점점 공이 안 맞는 것 같지??'
완벽한 것 같았던 레슨을 기본으로 가르쳐준 대로 자세도 새로 다 교정하고 열심히 했으나 오히려 거리도 점점 줄어들고, 자세도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유튜브로도 이프로 저프로 너무 뭔가 많이 보고, 이것 저것 새로운 자세들을 적용한 탓일까... 돈은 돈대로 들였는데 헷갈리고 미치겠는 환장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한참을 연습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수 같은 한마디가 들려온다..
"아이언은 그렇게 하면 안 돼~ 지금 그 자세에서 팔이 생명이야. 오른팔을 빨리 접었다 폈다 해봐~"
사실, 이부장의 아파트 연습장에 프로 강사님이 한 분 상주해 계신다. 나이가 지긋이 들으시기도 했고, 그냥 어슬렁어슬렁 골프장 관리하고 다니시니 실력이 없는 분처럼 느껴져서 은근 그분을 무시했는데 이부장을 가만히 보고 계셨던 것 같다.
놀란 이부장... "네??"
"아니 내가 지금 지나가다 계속 봤는데 한 가지 가르쳐줄게. 오른팔을 이렇게 해보라고. "
직접 손수 시범까지 보이시며 이부장에게 알려주는 아파트 프로 선생님. 이부장을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연습들을 정지하고 쳐다본다.
'앗!!! 뭐지?? 너무 잘 되잖아... 쉽고 너무 편하고..........'
"그래~ 그게 제일 중요해. 그렇게 다시 연습해 봐~" 하고 쓱 다시 지나가시는 프로님....
순간 멘붕이 온다.
사실 아파트 프로님도 레슨을 하시긴 한다. 가격도 일반 레슨장 가서 받는 것보다 3/1 가격으로 저렴하기도 하고 뭔가 잘 가르칠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어 아예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그다음 아파트 연습장을 갈 때 대기를 하느냐고 기다리던 중 몇몇 사람들이 그 프로 선생님과 얘기하는 걸 듣고만 이부장...
"김현철 프로님하고 친구분이신데 요즘도 같이 필드 나가세요?"
"아니 요즘엔 그냥 연락만 하고 있어. 잘 안 나가~ 예전에 그놈이 나랑 비슷한 실력이었는데 김현정 선수를 가르쳤는데 대박이 나서 유명해졌잖아. 하하"
이럴 수가... 이 분은 우리나라에서 나름 정말 골프 교과서로 불리시는 김현철 프로님과 친구분이셨다. 아파트 연습장을 오래 다닌 분들 사이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레슨비도 저렴하고 아파트 연습장 프로님이 잘 나가는 사람일 거라 생각해 본 적 없는 이부장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이부장은 5회권을 꾸역꾸역 다니며 더 이상 스튜디오 레슨은 재등록하지 않았다.
스튜디오 레슨을 받으며 느낀 것은, 이부장이 간 유명하다는 유튜버 강사님은 자기만의 자세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선수들의 자세를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초보가 그게 쉽게 될 리가 없다.
하지만 아파트 레슨장에서 가끔 강사님이 가르치는 걸 보니 이미 구력이 좀 돼가는 분들에게 기존의 자세를 크게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가장 최선이 되게 핵심 포인트만 수정해 주시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지금껏 무슨 짓을 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