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블리스 Oct 25. 2022

남자는 거리, 여자는 옷, 장비, 폼

필드를 처음 나가려니 너무 떨리는 아내.. 설렘 반 긴장반.. 그나저나 뭐부터 준비를 하지? 막상 나갈 생각을 하니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신발도 사야 하고, 모자도 사야 하고, 옷도 사야 하고, 그동안 남편에게 사준 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여자들 옷이 훨씬 더 화려하고, 가짓수가 많은 느낌... 


아들 키울 때 티셔츠랑 바지만 있으면 됐는데 딸은 스타킹부터 온갖 액세서리 등 갖춰서 입혀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갑자기 부담이 확 오기 시작한다.


그래.. 홈쇼핑이 좀 저렴하다고 하는데 홈쇼핑에서 적당한 걸로 사자고 맘먹은 아내.. 그래도 이왕 사는 거 신발은 좀 좋은 걸로 사려는데 모두 20~30만 원대가 훌쩍 넘는다.


어쨌든 신발은 오래 신으면 되니까 괜찮다고 위안하며 3개월 할부로 긁는다. 치마랑 티셔츠, 모자, 스타킹, 양말 등 갖추려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만 원은 훌쩍 넘어버렸다. 


필드 한번 가려고 준비한 것만 50만 원대가 돼버렸다. 아.. 괜히 간다고 했나?? 그런데 다 같이 간다는데 안 갈 수도 없고 맘은 조금 불편했지만 이왕 가는 거 좋은 생각만 하기로 마음먹는다.


경험 없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소모품을 준비해 주고, 대충 룰을 알려주고 응원을 한껏 받는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어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해 필드장으로 go go~^^ 


헛... 그런데 모두 모였는데 스크린 다닐 때는 츄리닝 입고 오던 엄마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청 화려하게 장착을 하고 왔다. 


나는 검색할 때 비싸서 사지도 못했던 브랜드들이 명확하게 찍힌 옷들로... 


갑자기 홈쇼핑에서 사서 입고 온 내가 좀 부끄러워지고 처음 티샷을 하는데 처음이라 떨리는 것도 있지만 이부장 아내는 다들 자신을 바라본다는 생각에 옷이 신경 쓰여 집중도 잘되지 않아 미스샷을 내고 만다.


그나마 자기와 비슷한 수준이라서 그동안 위로받았던 한 엄마마저 골프 실력은 별로여도 너무 이쁘게 하고 와서 갑자기 거리감이 확 느껴진다.


다른 엄마들은 옷도 이쁜데 스윙 폼도 좋고 요즘 구하기도 힘든 비싼 골프채에다가 캐디들의 나이스 샷이 연발 나온다. 


다들 그렇게 부자인가? 갑자기 호구조사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데다 한 샷 한 샷 칠 때마다 여기에 사진 찍으러 온 건지 골프를 치러 온 건지 모르겠다. 


엄마들이 다들 사진 찍고 카트에서 인스타에 자기 사진들 올리기 바쁘다. 예쁘다고 부럽다는 댓글이 끝없이 달린다.


자신이 봐도 사진에서 보이는 모습은 뭔가 너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사진의 여유로움과 달리 벙커에 빠진 샷에서 이부장 아내는 계속 삽질만 여러 번 한다. 맘 같아선 그냥 손으로 잡아서 냅다 홀컵에 던지고 싶다. 그게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퍼터 거리감도 없고 힘 조절이 안되다 보니 계속 핑퐁 혼자 탁구를 한다. 여기는 과연 골프장인가 탁구장인가........


다들 처음이라 그런 거라고 잘 쳤다고 이부장 아내를 위로해 준다. 


다행히 비슷한 수준의 엄마도 상황이 좋지 않은 편이라 많이 걸으면 운동 돼서 다이어트에 좋다고 서로 위로한다.


스크린골프에서는 해저드던 벙커던 다시 치면 잘만 날아가는데 필드와 스크린은 이승철과 박명수의 차이처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만다. 


그래서 다들 골프 실력 늘리려면 잔디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나보다.


어찌 됐던 첫 필드의 느낌은 참 좋다. 광활한 잔디와 호수... 뭔가 모르게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여자 넷이서 이렇게 깔깔거리며 웃었던 게 언제인가..


그런데 필드비, 캐드비, 카트비 등등 계산하니 얼추 30만원 정도는 든다..  맙소사.. 밥값은 또 왜이리 비싼건지...필드 한번 때문에 벌써 80만원 이상이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또르르.....


내 속도 모르고 "우리 같이 필드 오니까 너무 좋다..  맘도 잘 맞고 앞으로 매번은 못 와도 한두 달에 한 번이라도 시간 맞춰서 필드 다니자~ 어때?^^"


모두 OK를 외치고 나 역시 대답했지만 돈 걱정이 살짝 드는 건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빠질 수도 없고, 이미 살 거 다사고 시작한 상태라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면 뭐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아파트 연습장에서 열심히 골프 연습을 하고 있는 이부장..  거리는 잘 나는 것 같은데 고질병인 슬라이스 샷이 잘 수정이 안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아이언도 좀 뭔가 안 맞는 것 같고.. 


그것만 좀 고쳐지면 거리를 더 보낼 수 있겠다는 욕심이 든다. 자세를 고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문제 포즈를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그런데 자신과 정말 비슷한 영상을 찾아내고 기뻐한다. 이걸 보고 연습하면 모든 게 수정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어째 본 대로 연습해도 맘처럼 잘 되지가 않는다. 이제 좀 칠만하고 거리도 나가니 연습장에서 상주하는 프로 선생님보다 스튜디오 프로님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왠지 그 프로님에게 레슨을 받으면 나의 실력을 급상승시켜줄 것 만 같은 느낌이 팍 든다. 댓글에도 그 프로님에 대한 찬사가 가득하다. 


안 그래도 레슨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았는데 이왕에 배울 거면 처음에 확실히 배워야 돈을 아끼는 거라 생각하는 이부장. 조금 비싸지만 다 이유가 있어... 그렇게 합리화를 시작하고 스튜디오 레슨에 예약 전화를 건다. 


누가 그랬던가... 골프에서 남자는 거리, 여자는 폼, 옷, 장비 빨이라고....





이전 05화 아내의 반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