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다례를 하면 뭔가 보일까

내가 매일 다례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될까

by Scarlet

다례(茶禮)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차를 내릴 때의 의례이다. 옛날에는 몹시나 까다로웠을 무언가이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우라센케, 오모테센케, 무샤노코지센케의 3대 종파가 있으며, 종파별로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다도를 섬세하게 한다. 유튜브에서 본 그들의 다도는 매우 복잡했다. 기모노를 입고 물병을 들고 걷는 것조차도 어려워 보였다. 물론, 내가 하는 다례는 그런 건 아니다. 지인이 말하기로는 본인은 7개의 다건을 쓰는 몹시 복잡한 다례를 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건 하고 있지 않다.


내가 하는 다례는 교수님께 배운 것이다. 매우 쉽고 간소화되어, 10분 남짓이면 끝나는 그런 다례다. 다건을 걷고, 찻잔을 데우고, 차를 우려서 마시고, 다 마신 뒤의 뒷정리를 한 뒤 다시 다건을 덮는 그 행위가 그렇게까지 길 필요가 있을까 싶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들 내게 말했다. 네게 꼭 필요한 행위라고. 나는 관심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그 말을 듣고 다례를 시작했다.


사실 내 방은 좁다. 쉽게 그런 공간을 만들 수는 없었다. 다례를 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집에서 조그맣고 네모난 밥상을 하나 가져왔다. 그리고 거기에 다례를 할 도구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도구들은 모두 받은 것이다. 직장에서 쓰지 않는다고 치우려는 다기를 받아와서 나열해 놓으니 제법 그럴듯했다. 다건은 꽤 많았지만 얼룩이 잔뜩 있어서, 얼룩 없는 것으로 세 개만 겨우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려야 했다. 그래도 다구를 갖추는 것은 꽤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해 주었다. 뭔가... 내가 차를 한다! 고 소리치는 느낌.


처음에는 다례 순서부터 헷갈렸다. 이 때는 물을 부어야 하는구나, 이 때는 잔을 씻어야 하는구나. 왜 나는 저렇게 깔끔하게 안 되는 걸까. 하고 휴대폰으로 찍어놓은 영상만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다례를 '따라'했다. 내가 다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례에 끌려다니는 꼴이었다. 그 때 영상을 찍어놓았으면 꽤 재미있었을 텐데, 남은 영상이 없어서 꽤 아쉽다. 어느 정도 다례를 외운 뒤, 나는 내가 다례를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두었다. 옆모습에 얼굴도 보이지 않게 찍어서 엉망이지만, 영상 속 나는 꽤 멋있어 보인다. 정작 다례를 하는 내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한데도. 영상과 생각의 갭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다례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내 급한 성격이 발동했다. 나는 다례 순서를 다 외웠고, 영상을 여전히 틀어는 놓았지만 굳이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자 곧 12분이었던 다례가 급 8분 남짓으로 짧아졌다. 내가 후딱후딱 해버린 탓이었다. 무슨 다례를 숨도 안 쉬고 하나, 그게 그 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출근 전 하는 다례는 내게 시간 부담이었다. 얼른 출근을 해야 하는데, 너무 각 잡고 하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 탓에, 속도는 점차 빨라졌고 점점 다례를 하는데 뭔가를 빼먹거나 엉망으로 하는 경우가 생겨 버렸다.


그러다가, 내가 집 근처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자 아침에 시간이 많이 남았고, 나는 그 남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다시 다례 시간을 늘리게 되었다. 마음이 좀 여유로워졌고, 다례에도 그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차를 우릴 때 찻물을 넉넉히 부어 텀블러에 담아 가기도 했다. 그리고 괜히 내가 찔린 것도 있긴 했다. 다례인데, 제대로 하지 않는 느낌에 괜히 신경이 쓰였던 탓이다. 하지만 그 '시간', 그러니까, 하나의 행동을 하고 나서 숨을 쉬고 다시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은 다례에 쉼과 편안함을 부여한다. 내가 다례를 서두르며 느꼈던 불편함은, 쉼이 없이 이어지는 내 삶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늘 서두르고, 다급히 뭔가를 하곤 했던 나의 삶과 내 다도는, 어쩌면 굉장히 닮아 있었다.

녹차 다례로 내 삶에 쉼표를 더한 뒤, 나는 다음으로 말차 다도를 배우게 되었다. 물론 이것도 9분 남짓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하는, 큰 도구(특히 화로나 물주전자 같은 거!)가 필요없는 간편한 다례였다. 말차는 내게 손에 힘을 빼는 법을 알려 주었다. 차선으로 말차를 격불할 때, 어깨에 힘을 주면 지나치게 팔이 뻣뻣해지고, 그래서인지 격불이 제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 최대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 몸에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도, 어깨에 힘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자존심보다 자존감을 내세우던 사람이었다.


요즘은 다례를 하며 느낀다. 나는 늘 하늘로 팔딱팔딱 뛰어가려 했었다. 그런 성격을 걷잡을 수 없어서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그런 내가 가끔씩은 차분해진다. 조금은 얌전해졌고, 조금은 내가 조절 가능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남들이 보기에 '부담스러운' 성격이지만, 나이도 막지 못한 그 폭주를 차가 조금씩 눌러 준다. 다정하게, 따뜻하게.


편안한 다례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유튜브에 넘치면 좋겠다. 다들 다례를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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