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 숨겨진 장의 파티
2024년 10월
가족들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장소는 '후쿠오카'.
뭐 정확하게는 친누나와 사촌동생 두 명을 데리고, 오사카에 갔다 온 것이 세미-가족여행이긴 하다.
그때 마침 일본독감이 유행하고 있었고, 그걸 그대로 걸려버렸다. 매우 아쉽고, 가족들에겐 미안한 여행.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리고 엄마와 누나, 이모와 이모아들(동갑) 이렇게 5인파티를 구성해서 갔기 때문에 정말 좋은 여행.
후쿠오카에서 기가 막히는 핸드드립 전문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히이라기(ひいらぎ)
부자(父子)가 50년 넘게 운영 중인 핸드드립 전문점이며, 커피를 내리는 방법이 너무 신기했다.
나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과 히이라기 모카 블렌드를 마셨다.
맛은 뭐 나 같은 초보가 감히 맛없다고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매우 맛있는 커피였다.
그래서 지난 5월 후쿠오카 여행 때, 또 갔다!
이 커피 한 잔으로 후쿠오카 여행에 더 깊은 맛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우리의 손에는 커피가 들려있는 날이 많아졌다.
한 여름의 날씨에 빠질 수 없는 인생 동반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오죽하면, '카페인 수혈'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고 있다.
진짜 어느 순간부터 커피가 물처럼 느껴진다. 카페인이 내 피보다 더 흐르는 느낌이다.
근데 커피를 많이 마신 날에는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화장실에 많이 간다.
정신을 깨우려고 커피를 마셨지만, 정작 깨워지는 것은 나의 장이 아닌가?
게다가 디카페인으로 먹었는데, 전혀 소용이 없다.
도대체 커피를 마신 후 나의 몸은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역시나 커피는 과학이다.
커피는 위장을 깨운다.(위장관 반사)
우리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위의 벽에는 여러 종류의 '감각센서'가 달려있다.
위에 음식 물이 들어와서 부풀게 되면, 이 감각센서들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내장감각신경이 알린다. 위에 음식 물이 들어와서 위가 팽창하고 있다."
위의 정보가 뇌(연수)로 전달된다.
그 순간, 우리 몸은 자극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반응하는 '무조건 반사'가 일어나게 된다.
즉, 태어날 때부터 내장에 입력 돼 있는 자동반응이다.
어두운 터널을 들어가고 나올 때 나타나는 '동공반사'
학교 또는 병원에서 무릎 중앙부를 툭 쳤는데 다리가 자동으로 들려지는 '무릎반사'
이 자극은 장의 근육이 수축하는 것을 유도해 '연동운동'을 일으킨다.
즉, 우리는 음식을 먹기만 하면 대장이 꿀렁꿀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꿀렁거림을 더 도와주는 친구가 바로 '카페인'이다.
우리 몸에는 세포 안에서 여러 신호를 전달해 주는 물질인 'cAMP'라는 친구가 있다.
쉽게 얘기하면 '알람'이다.
"지금 에너지 써!, 지금 심장 빨리 뛰어!, 효소 작동시켜!"
"진행시켜~!"
알람은 꺼야 제 맛이 아닌가?
cAMP를 꺼주는 친구를 'PDE(Phosphodiesterase)' 즉, '분해하는 친구'라고 한다.
"어이 cAMP 고만혀". 이 말을 들은 cAMP는 AMP로 바뀌고, ATP(에너지)가 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근데, 카페인이 'PDE'를 방해한다. 즉, 신호 전달을 하는 친구를 못 하게 막는 것이다.
"야 PDE 나랑 놀자!! 일 그만하고(cAMP 분해) 나랑 더 재밌게 놀자!!"
이렇게 되면 우리 세포 안에서 cAMP의 농도가 증가하게 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카페인이 들어와서 PDE를 방해하는 순간 cAMP는 장운동을 촉진시켜 버린다.
즉, 알람을 꺼야 하는데 끄지 못하는 상황이며, 소리가 미친 듯이 울리고 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또한, 카페인은 아데노신이 아데노신 수용체에 붙는 것을 방해한다. 즉, 쉬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데노신은 우리가 전에 배웠던 ATP(에너지)를 다 쓰고 남은 것이 '아데노신'이다.
우리 뇌가 ATP(에너지)를 많이 쓰고 나면, 세포 바깥쪽에 아데노신이 흘러나오게 되고,
이게 점점 쌓이면 신경세포 표면에 있는 아데노신 수용체에 결합을 한다.
"야... 이제 그만 쉬자. 이러다가 진짜 다 죽는다 제발. 살려줘"
라고 말하면서 우리 몸을 '릴랙스'상태로 만들고, 장의 운동을 억제시킨다.
그러나 카페인은 이 아데노신 수용체에 붙어버린다. 그러고는
"야~ 지금 쉬면 어떡해! 나랑 같이 놀아야지! 안 그래???"
아데노신 수용체는 "어? 나에게 뭐가 붙었는데? 근데, 아데노신이 아닌데? 근데 좋아 보이네~"
라고 느끼면서 일을 안 하게 되며,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방출시키고,
뇌는 "계속 진행시켜!!!!!!!!!!!!!"라고 한다.
이게 바로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되는 것이다.
즉, 카페인은 '쉬자'는 신호를 가로채고, '놀자'는 신호로 바꿔버린 것이다.
더불어, 쉬지를 못 하기 때문에 장 근육의 수축성과 흥분성을 더욱더욱 증가시키게 된다.
이로 인해, 장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나의 배는 폭풍전야의 상황에 이르게 되며,
화장실과의 뜨거운 만남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다...?
심지어 따뜻한 커피가 아니라 차가운 커피다..?
세계 3차 대전은 바로 지금 나의 배 안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커피를 먹었을 때,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반응 중에 하나.
결국 커피는 우리 뇌만 깨우는 게 아니었다.
위, 장, 심지어 방광도 깨워버린다.
한 잔의 커피가 시작한 몸속의 작은 반란.
그 덕분에 우리는 또 한 번, 정신을 차리고
인생이란 하루를 밀어낸다.
잠깐, 너를 마셨을 뿐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