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생리] 그날의 생리학#1 - 뭔데 날 힘들게 해?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냐고

by 과커콜라
그날이 왔다.
나에게 직접 오는 그날은 아니지만
내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그날이 왔다.


한국어는 그날 또는 마법이라고 하고,

일본어는 'アンネの日(안네의 날)' 또는 '赤飯(세키한)'이라고 하고,

중국어는 '来那个了(그게 왔어...)라고 하고,

영어는 'On my period' 또는 'Aunt Flo is visiting'이라고 하고,

불어는 'Les Anglais ont débarqué(영국군이 상륙했다)'라고 하며,

독어는 'Ich habe meine Tage(나 며칠 시작했어)라고 한다.


인종과 관계없이 지구에서 태어난 인간 중에 '여성'이라면

특별하게 이유가 없지 않은 이상 그날 앞에서는 평등하다.


폐경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반복되는 고통과 불편함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매달 그날을 버텨낸다.


그에 비해 남자는 겪지 않는다.

생리의 고통도 없으며, 임신의 고통도 없고, 출산의 고통도 없다.

몸으로 느껴본 적 없기에 그 고통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글을 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겪지 않았기에 쉽게 말할 수 없다.

다만 배워서 그리고 알려고 해서 아는 것뿐이다.


그날, 그 몸속에서는 무시무시할 만큼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그 안을 들여다보자.

과학이 우리를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게 해 줄지도 모르니까.


그날도 과학이다.


자궁은 매달 정성껏 방을 꾸민다.

아무도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를 새 생명을 위해서 준비한다.

푹신한 이불과 같은 '자궁 내막'을 깔고,

혈관을 촘촘하게 뻗고, 완벽한 공간을 만든다.


준비는 그냥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난소와의 협업 그리고 호르몬의 마법이 필요하다.


자궁과 난소는 매달 한 편의 다큐를 찍는다. 4부작의 미니다큐.


1부 - 월경기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린다" (1일 ~ 7일)

난자가 정자를 만나지 못했다. 즉,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

난자는 더 이상 자신이 할 역할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퇴장한다.


몸에서는 난자가 정자를 만나서 수정이 되고, 자궁에 안착하게 되면,

배아에서 자란 융모가 "새 생명이 만들어졌습니다!"라고 융모막에서

HCG(사람 융모 생식선자극호르몬)가 나오게 되는데, 이 호르몬이 분비되는 순간

여성의 몸은 약 10개월 동안 임신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독자님들도 알고 계시는 그 '임신테스트기(임테기)가 바로 HCG의 농도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HCG는 소변으로 나오기 때문에 검출이 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수정이 되지 않았다. 착상도 없다.

난자가 배란이 된 후, 난포에서 난자가 빠져나가고

남은 난포 세포들이 황체로 변한다.

황체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수정이 되지 않게 되면 황체도 퇴화를 하게 된다.

그때, 두 호르몬의 분비가 급락하게 되고, 자궁은 지은 집을 부시기 시작한다.


새 생명을 품어줄 보금자리가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철거공사를 시작한다.

철거를 시원하게 싸악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다.

프로게스테론 농도가 떨어지게 되면 자궁의 내막 즉, 집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게 된다.

이때,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친구가 자궁 근육을 수축시켜서 자궁 내막을 탈락시키게 되며,

아픈 고통을 느끼게 하는 주범이다.

*아픈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디테일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쓸모가 없어진 자궁 내막과 혈액 그리고 점액들이 나오게 되는 것을

'생리혈'이라고 부르게 된다. 생각보다 꽤 복잡한 조합이다.




2부 - 난포기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1일 ~ 14일 전후)

난자가 떠났기 때문에 다시 난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


몸 안에서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둘 다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가 된다.

이때, 뇌의 시상하부가 눈치를 챈다.

"호르몬이 없네? 새 판 깔아야겠네"

그래서 GnRH(생식샘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을 분비해서 뇌하수체에게

"마 호르몬 없는 거 안 보이나? 일 안 하나?"라고 핀잔을 주게 되고,

뇌하수체 전엽은 FSH(난포자극호르몬)을 분비시켜서 난소를 자극한다.


FSH를 받은 난소는 "쉬는 줄 알았는데 일 시키네"하고 다시

다수의 난포를 키우기 시작한다.

이 중에서 가장 잘 자라는 난포 딱 하나가 '우세난포'로 뽑히게 되고,

나머지 난포들은 자연스럽게 퇴장한다.(세포자멸사 apoptosis)


이 우세난포가 자라면서 '에스트로겐'을 분비하게 되는데,

다시 집을 짓는 기초작업을 실시하라는 신호를 주게 된다.

생리로 다 떨어져 나간 내막을 다시 재건하기 시작하고,

여성의 성기 안 쪽의 질에 점액 양이 늘고, 점성이 더 생기게 된다.

즉, 정자가 통과하기 좋게 독일의 아우토반처럼 길을 열심히 닦고 있는 중이다.


또한, 에스트로겐은 우리가 행복호르몬으로 알고 있는 '세로토닌'과 연계를 해서

피부가 좋아지게 되고, 멘탈이 안정되며, 활력이 높아지게 된다.


다시 정자를 맞이할 준비와 수정 후 새 생명의 보금자리를

이쁘게 꾸미고, 인테리어를 한다.


팁* 난포기의 길이는 사람마다 가장 유동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많습니다.

즉, 생리주기가 짧거나 긴 것은 주로 난포기가 얼마나 지속되냐에 따라 다르게 되죠.

또한, 스트레스와 수면, 다이어트 등 환경 요인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몸조리를 잘하시는 것이 도움이 되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3부 - 배란기 "출격하라!" (14일 전 후)

배란기의 방아쇠는 그냥 당겨지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난포기 동안에 '우세난포'가 열심히 자라면서 에스트로겐을 많이 분비했고,

그 에스트로겐이 정도를 넘어서면 뇌의 시상하부는 말한다.

"다 됐다 이제 자~ 드가자~"

뇌하수체를 더 강하게 쪼으기(?) 시작한다.

GnRH(생식샘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를 더 강하게 분비하게 되고,

뇌하수체를 자극시켜서 출격지시를 하게 된다.


이때, 에스트로겐이 일정 수치 이상으로 넘게 되면,

LH(황체형성호르몬)의 농도가 폭등하게 되고,

난포를 펑! 하고 터뜨려서 난자를 방출시킨다.


난자는 난소에서 튕겨져 나와 난관에 있는 섬모(털)에 의해

나팔관으로 이동하게 된다. 난자는 운동성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소개팅을 하는 장소로 가는 것이다.

난자는 소개팅을 하는 장소에서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24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

*정자는 최대 5일 동안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배란 전 2~3일도 '임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몸 안에서는 여러 신체변화가 일어나는데,

질 분비물이 계란 흰자처럼 맑고 미끈해지면서 도로를 새것처럼 닦게 되고,

배란 이후에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으로 체온이 상승해서, 몸을 따뜻하게 만든다.

또한, 일부 여성은 배란 통증을 겪기도 하는데, 난포가 터질 때, 배 안의 액체나 혈액 유출로 인한

자극 때문에 생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리하고 2주밖에 안 됐는데, 다시 피가 나오는 것을 생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임신 확률을 높이려는 생물학적 본능으로 인해, 성욕이 오르기도 한다.



4부 황체기 - "기다림" (15일 ~ 28일)


배란이 끝나면, 난자만 나간 게 아니다.

남은 난포 껍질이 황체로 변하게 된다.

황체는 '프로게스테론'을 팍팍, '에스트로겐'을 팍 분비해서,

자궁 내막을 유지하게 된다. 즉, 집을 더 튼튼하게 만들고, 집 안의 모든 가전, 가구를 세팅한다.

그리고 혹시나 수정됐을 경우 자궁이 수축해서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초 정밀 안정화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면역 반응 억제'를 해서,

수정이 됐을 경우 자궁 내막에 착상을 할 때, 방해할 수 있는 면역작용을 줄여주게 된다.

몸 전체가 "혹시라도?" 하면서 엄청 정성을 들이는 구간이다.


임신이 돼서, 착상에 성공을 하게 되면 HCG가 분비된다.

황체는 "오? 나 계속 일 해야 하네?"라고 말하며,

호르몬을 계속 분비해서 임신 유지 모드로 진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임신이 되지 않으면, HCG가 없다.

황체는 유지 명령을 못 받고 서서히 퇴화되고,

호르몬은 급감하며, 자궁 내막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시 철거 공사를 개시하고, 생리가 시작되게 된다.


이때,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으로 체온이 소폭 상승하게 되고,

부기와 짜증, 식욕이 증가하고, 부분적으로 가슴에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전설의 PMS(생리 전 증후군)으로 인해 "감정널뛰기"가 시작된다.

괜히 서럽고, 눈물이 나고, 오늘 누구 하나만 걸려봐라가 되는 이유가 전부

'호르몬' 때문이다.



생리가 단순한 출혈인가?

그저 '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는 한 달 동안 여성의 몸에서

"누군가를 품기 위해 준비했다는 증거".


난포가 자라고, 난자가 출발하고, 황체가 내막을 품고,

마지막엔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자궁까지.

이 모든 과정이

매달, 그 수많은 고통을 수반하며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그저 생물학적 기능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느낄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고, 피곤하지만, 그건 건강한 리듬이고,

몸이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신호다.


내가 생리를 직접 겪지 않는다고 해서, 몰라도 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나름의 언어들로 몸은 말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더 서로에게 다정해질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아픈 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왜 아픈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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