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위험(불확실성)을 감수하는 일이다. 가치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경매품에 높은 가격을 제시하듯. 상대가 위조품처럼 자신의 모습을 거짓으로 꾸며 다가온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입게 된다. ‘거짓’이라고 미리 말해 그렇지 보통은 그 자체, 그러니까 상대가 나를 속이는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 대개 경험에서 나오는 감으로 상대의 본심을 감별하지만 이미 마음을 뺏긴 뒤에는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눈동자처럼 기만의 징후를 좀처럼 읽어내지 못한다.
날카로운 눈, 냉철한 두뇌를 자랑하는 사람이라고 다를까.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높이 평가하며 거의 전적으로 옳다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에 대한 부정이나 의심은 용납되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공격은 자신의 판단(력)과 선택에 대한 공격이다. 그러다 결국 거짓에 상처받은 뒤에는 우울과 분노에 휩싸이는데, 그러고도 자신이 감수했던 위험의 크기(기회비용)만큼 그(와의 관계)에 대한 믿음(미련)을 포기하지 못한다. 사정이 있었을 거야, 그때만큼은 진심이었을 거야, 아직 나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을 거야 … 같은 변명을 대신해주면서.
최고의 감정가
예술품 경매를 진행하는 버질 올드먼(맨위).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컷
버질 올드먼(제프리 러쉬)은 바티칸 미술관장이 전화를 해올 만큼 업계 최고라 평가받는 예술품 감정가이자 경매 진행자다. 그는 어느 날 한 여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올드먼과는 사무실 전화로만 통화가 가능하다. 여자는 마침 올드먼이 자리에 있을 때 전화를 걸어왔다. 말투가 어딘지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집안의 물건들을 감정해달라고 부탁한다. 올드먼은 직접 맡기를 거절하지만 여자는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끈질기게 매달린다.
<시네마 천국>(1988)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영화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이 영화 <베스트 오퍼(The Best Offer)>(2013)는 올드먼이 여자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수수께끼 같은 본론으로 올라선다. 올드먼은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 의문의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어느새 그에게 집착하게 되는데, 그 모습은 진위가 불확실한 예술품에 마음을 뺏겨 계속해서 더 높은 금액을 부르다 어느새 최고가격(베스트 오퍼)을 불러버린 경매 참가자를 은유한다. 흥미로운 건 이 역설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다.
36년 경력의 감정가 올드먼은 단단하게 벽을 치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늘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추고, 빈틈없는 정장 차림에 장갑을 낀다. 옷장에는 차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색상과 패턴이 비슷한 정장 수십 벌이 도열한 군인들처럼 빽빽하게 걸려 있다. 또 다른 수납장은 전문상점 진열대라도 되는 양 장갑으로 가득하다.
고급 식당 한가운데에 혼자 앉아 있는 올드먼. 그는 식사를 할 때도 장갑을 벗지 않는다.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컷
장갑은 올드먼의 성격과 가치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물건이든 사람이든 맨손으로는 만지는 법이 없다. 악수를 할 때는 물론 샴페인을 마시거나 식사를 할 때도 장갑을 벗지 않는다. 전화기는 위생커버나 손수건 따위로 감싸고서만 사용한다. 손으로 만지는 행위는 감촉과 온기를 주고받는 일이다. 올드먼은 그렇게 ‘상대에게 가 닿는’ 류의 인간적인 접촉을 원천 차단한다. 어느 대목에서 장갑을 끼는 이유에 대해 그는 “청결을 위해서”라고 답하지만 이 말은 진짜 이유에 대한 대답(나는 인간적인 교류가 두렵다)을 회피하는 핑계처럼 들릴 뿐이다.
올드먼의 집은 어떤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궁전처럼 크고 화려하지만 그의 말대로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돈을 받고 사람을 들일 목적으로 꾸며놓은 호텔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집에는 도우미를 제외하고는 드나드는 사람이 없다. 올드먼은 도우미들마저 불편해한다.
몸가짐에 빈틈이 없는 올드먼의 말투는 정중하지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하다. 감정사로서 그의 판정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한다. 올드먼은 이런 권위와, 경매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예술품을 사실상 빼돌려 왔다. 작품 가치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한 뒤 화가였던 친구 빌리(도날드 서덜랜드)를 경매에 참석시켜 사실상 헐값에 낙찰받도록 하는 식이다. 능수능란한 경매 진행자인 올드먼은 입찰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아슬아슬하게 낙찰시키는 듯하지만 빌리를 통해 챙긴 작품의 실제 가치는 낙찰가보다 수십 배 높다. 한번은 800만 파운드(117억 원) 짜리 진품을 위조품으로 판정해 9만 파운드(1억3000여만 원)에 낙찰시키기도 한다.
올드먼이 시키는 대로 예술품을 낙찰받으려고 경매에 참석한 전직 화가 빌리.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컷
올드먼이 직업적 양심을 내팽개치고 속임수까지 써가며 집착하는 작품은 여성을 모델로 한 초상화들이다. 올드먼은 초상화 속 여자의 얼굴을 만질 때만은 그 고집스러운 장갑을 벗는다. 집 안 깊숙이 숨어 있는 비밀의 방에는 올드먼이 평생 수집한 초상화 수백 점이 벽을 도배하고 있다. 올드먼은 그 방에 들어서면 한가운데 놓인 1인 소파에 앉아 와인의 맛과 향을 깊이 음미하듯 여자들의 얼굴을 감상한다.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림 그 자체가 아닌 인간 여성에 대한 동경이나 경외다. 그리고 동시에 결핍과 콤플렉스가 엿보인다.
불완전한 남자
올드먼은 노년에 들어선 지금까지 여자와 사귀어본 경험이 없다. 같은 공간에 젊은 여자가 등장할 때마다 그는 소극적인 호기심과 본능적인 경계심을 동시에 내비친다. 경매사나 감정인으로서는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여자와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저만치서, 혹은 등을 돌려 앉은 채로 훔쳐만 본다. 올드먼은 왜 결혼을 안 했느냐는 질문을 받자 “여자에게 관심 있는 만큼 두려움도 컸다. 여자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몰래 수집한 여인의 초상화들에 둘러싸인 듯 서 있는 올드먼.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컷
올드먼은 고상하지만 외로운 인물로 묘사된다. 그가 연회장 같은 고급 식당 한가운데 혼자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은 평범한 한 끼를 먹는 행위가 아니라 음식평론가가 비평을 위해 음식을 맛보는 직업적 절차처럼 보인다. 둥근 식탁에 의자는 하나만 놓여 있고, 다른 식탁들과 달리 장식용 초도 올라와 있지 않아 더 황량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지만 올드먼은 몸을 꼿꼿이 세워 앉은 채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식사를 이어간다. 그 후에는 식당 직원들이 생일을 축하하며 특제 디저트를 내오지만 가늘고 기다란 초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올드먼은 지켜만 볼 뿐 손도 대지 않는다. ‘나 홀로 생일’이 싫었던 기색이지만 그는 “생일이 내일이니 미리 축하받고 싶지는 않다”며 도도하게 일어선다.
자신의 정서적 결핍을 자각하면서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써온 올드먼은 클레어 이벳슨(실비아 획스)을 만나면서 흔들린다. 클레어는 올드먼에게 사정해 일(부모가 남긴 물건들에 대한 감정)을 맡기고도 광장공포증을 이유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나기로 약속하고도 번번이 핑계를 대며 나타나지 않는 클레어는 저택 벽 뒤에 숨어 살고 있었다. 저택 관리인은 스물일곱 살쯤 된 클레어가 10년 넘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올드먼이 저택에 들어선 뒤 관계의 주도권은 빠르게 클레어에게 넘어간다.
‘벽 뒤의 여자’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난데없이 화를 냈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서는 울먹이며 사과하고 또 갑자기 토라졌다가 누그러져서는 고분고분해진다. 불편할수록 우리는 신경 쓰게 된다. 그것이 모순과 수수께끼의 힘이다. 올드먼이 클레어의 집 구석구석에 떨어져 있는 톱니바퀴 뭉치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처럼. 조립을 부탁받은 기계수리공 로버트(짐 스터게스)가 “예술 감정가가 고작 기계 부속에 열광하느냐”고 하자 올드먼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 모순에 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올드먼은 클레어라는 모순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올드먼과 대화하는 기계수리공 로버트.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컷
클레어에게 빠져들면서 올드먼은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클레어의 집에서 나온 기계부품들을 끼워 맞춘 로봇을 보고 올드먼은 “불완전해 보인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자신에 대해 말하는 독백처럼 들린다. 올드먼이 클레어와 가까워지는 동안 로봇도 점차 형태를 갖춰가면서 올드먼과 로봇은 더욱 동일시된다. 그렇다면 이 ‘사람 닮은 로봇’이 완성되는 순간 올드먼도 사람다운 존재로 완성될 것이다.
이 과정을 돕는 건 젊은 수리공 로버트다. 그는 올드먼이 가져다주는 부품들로 로봇을 완성해가면서 클레어와의 관계로 고민하는 올드먼에게 조언한다. 로버트는 여자의 심리를 잘 아는 인물이다. 그는 가게를 찾는 여자 고객들과 거리낌 없이 스킨십을 하고 저녁식사 약속을 잡는다. 기계와 여자에 대한 이해. 그것은 올드먼이 가장 동경하는 지식이다. 올드먼이 기계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건 그의 논문 주제가 18세기 로봇 발명가였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누구보다 자존심 강한 올드먼이지만 로버트 앞에서만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고분고분 귀를 기울인다.
아름다운 위조품
클레어를 벽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올드먼의 설득은 번번이 실패한다. 당신이 남들에게 닿기 싫어 장갑을 끼듯 나도 남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 이게 클레어의 반박이다. 그의 말처럼 올드먼과 클레어는 타인과의 접촉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올드먼의 장갑과 클레어의 벽은 결국 같은 목적의 보호수단인 것이다.
벽 뒤에서 나오지 않는 클레어와 대화하기 위해 서 있는 올드먼.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컷
어느 날 올드먼은 저택을 나가는 것처럼 속이고 집 한구석에 숨는다. 위험한 시도지만 사람이 있으면 밖으로 나오지 않는 클레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올드먼은 클레어에게 깊이 빠져 있었다. 벽 밖으로 나온 클레어는 젊고 아름답다. 올드먼은 더욱 마음을 뺏긴다. 클레어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올드먼은 허점이 많아진다. 경매 과정에서 먼저 가격을 부른 사람이 아니라 빌리에게 낙찰시켜 비난을 받고, 클레어가 사라진 날에는 아예 경매에 집중하지 못해 물건을 잘못 설명해버리고 만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여러 등장인물을 의심하게 된다. 저택 관리인부터 빌리, 로버트, 클레어까지. 화가였던 빌리는 올드먼이 재능을 무시해 그림을 그만뒀고, 로버트는 내심 클레어에게 관심을 보이며 어떤 속내를 숨기는 것 같다. 클레어는 거의 모든 것이 수수께끼인 여자다. 저택 관리인은 빌리가 돈을 찔러줄 때에야 클레어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내놓는다. 이 중 누군가가, 올드먼이 예술품의 가치를 속이듯 올드먼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드먼이 클레어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바닥에서 줍게 되는 기계부품들은 누군가가 일부러 놓아두는 게 분명하다. 그에게는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다.
하루는 로버트의 여자친구가 올드먼을 찾아와 로버트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올드먼은 로버트가 클레어를 가로챌까 봐 두려워진다. 그는 조바심이 커진 경매 참가자들이 경쟁적으로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듯 클레어를 손에 넣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베스트 오퍼’를 제시한다.
벽 밖으로 나온 클레어의 손등에 입맞춤하는 올드먼.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컷
올드먼이 비밀의 문들을 열고 깊숙한 공간으로 들어가 초상화에 둘러싸인 모습은 그가 장갑을 벗고 어디엔가 손을 대는 것과 같은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다고 상대가 자신의 것이 되거나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정확히 읽을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올드먼은 까만 곰팡이에 파묻힌 고가의 작품을 알아보지만 바로 앞에서 전라가 된 클레어를 안고서도 속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클레어는 올드먼을 사랑했을까. 그는 떠나기 전 올드먼을 끌어안으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라고 말했다.
아름답다고 모두 진짜인 것은 아니다. 위조품으로 판정한 작품에 대해 소유자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위조품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하자 올드먼은 “추하다는 말이 아니라 진품이 아니라는 얘기”라고 말한다. 아름답지만 진짜가 아닌 것들이 있다. 하지만 가짜일지도 모르는 클레어를 여전히 깊이 사랑하는 올드먼의 경우를 보자면 위조품이라도 진품 같은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있다는 올드먼의 말은 의미를 조금 달리해 결국 그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클레어가 언젠가 말한 체코 프라하의 식당을 찾아간 올드먼은 혼자 왔느냐는 직원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사랑을 앓을수록 우리는 완전해지기보다는 불완전해진다. 애초 사람답다는 것은 불완전하다는 것인지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