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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너머 Oct 22. 2023

짐꾼의 탄생

아들의 쓸모에 대하여

쌀이 떨어졌다.  처음 페낭에 도착해서 마트에서 샀던 10키로 짜리 길쭉한 현지 쌀을 먹다가 한 달쯤 후에 배로 도착한 집에서 보낸 쌀을 여기 쌀과 잡곡을 섞어 밥을 지어 먹었는데, 지금까지 쌀을 안 샀으니 20키로 쯤으로 대여섯 달을 먹은 셈이다. 음...아무리 두 식구가 먹은 것이라해도  밥을 많이 안 해 먹긴 했구나 - 싶다.     

 사실 이 나라 사람들은 밥을 잘 안 해먹는다고 한다. 아무리 작은 시골마을이라도 아침 저녁에만 문을 여는 식당들...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가게들이 낮엔 셔터문을 닫고 있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가판대에 먹거리를 늘어놓고 파는데, 길 옆에 테이블 두어 개도 있어서 음식을 먹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식당엘 가도 주문을 하려고 하면 "여기서 먹을거니? 가지고 갈거니?" 라고 반드시 물어본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근처 모닝마켓에서 아침이면 나시르막이나 쌀국수를 포장한 비닐봉지를 몇개 씩 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흔히 보인다. 점심 때 쯤부터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여는 커다란 호커센터(다양한 포장마차들이 모여 있는 곳)에도 언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5링깃에서 7링깃 쯤이면  한끼를 해결할 수 있으니 굳이 더운 나라에서 집에서 불을 쓰면서 음식을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나는 아침을 안 먹은 지 좀 되었고, 승겸인 새벽에(?) 등교를 하니 학교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30분간의 브레이크 타임을 주고 있어 간단한 빵이나 샌드위치 같은 걸 만들어 보내니 쌀 소비가 많지 않은 건 당연하다.      


차가 없으니 무거운 물건을 사 들고 오는 것이 신경이 쓰인다. 이것 저것 장바구니에 담았다가도 계산대 앞에서 당장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다시 꺼내 놓게 된다. 차가 없으니 생긴 굉장히 큰 장점이다.      

집에까지 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이 곳에선 그냥 밖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데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갈 엄두가 안 난다.   화장지나 세제 같은 크고 무거운 물건들은 지난 번 차를 렌트했을 때 몇 개씩 사다가 쟁여 두었지만 쌀은 미리 사다 묵히는 것이 벌레가 날 수도 있다고 하고 아무래도 찜찜해서 사지 않았었다.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쌀 중에 그나마 한국 밥맛과 비슷한 맛이 난다는 쌀을 한 봉지 샀다. 진공포장 된 5키로 짜리 쌀을 들어보니 괜히 걱정했나 싶게 들을 만 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사고  쌀만 사서 들고 가면 되겠다 싶은데, 막상 마트에 오니 당장 필요한 것들이 몇가지 보여 장바구니에 담았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 승겸이에게 네가 쌀을 들고 갈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며      

"가볍네~" 쿨하게 들고 앞서 간다.      

보나마나 조금 가다가 무겁다고 내게 넘길게 뻔하다고 생각하며  뒤를 따라 가는데, 얼마 안가서 팔이 아픈지 이 쪽 저쪽으로 옮겨 들다가 두 팔로 안고 가더니, 나중엔 머리에 이고 씩씩하게 앞서 걸어간다.      

 "와~~, 우리 아들이 이렇게 힘이 센 줄 몰랐네. 이제 다 컸네."      

 일부러 폭풍 칭찬을 늘어 놓으며 뒤를 따라갔다.     

 중간에 내게 넘기라고 몇번을 얘기해도 머리 위에서 내려놓지 않고 집까지 잘 들고 왔다.      

 이제 쌀 사서 들고 올 걱정 안해도 되겠다.  드디어 아들을 키워서 짐꾼으로 써 먹는구나.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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