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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걷는 최선화 Mar 13. 2023

지칭개, 잊고 있던 너를 다시 만났다.

식물의 재발견 - 식물일기 (23. 3.13. 월)

날씨 : 날씨가 잠시 영하로 떨어졌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


서울행 버스를 타러 환승역까지 걸었다. 그때 눈에 띈 초본식물 하나. ‘어, 쟤 아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름은 얼마 전 노란 꽃을 피운 뽀리뱅이....

식물도감이 옆에 있었다면 찾아봤겠지만 이동 중이라 식물앱에 이름을 물었다. ‘지칭개’!!


앱에 올라온 이름을 보는 순간 연보랏빛 꽃, 로제트, 양지바른 곳과 같은 이 식물의 특징들이 떠올랐다.


로제트 상태로 겨울을 보내는 지칭개는 이른 봄 가장 먼저 돋아나는 식물 중 하나이다. 언듯 보면 냉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냉이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냉이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덜 자랐을 때 잎가장자리가 닮았기 때문이다. 두 해살이풀인 지칭개는 아시아 일부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크게 눈에 띄지 않던 이 식물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때는 5~7월 사이 길게 쭉 뻗은 줄기 끝에서 연보랏빛 꽃이 필 때이다.


뿌리를 제외한 전체를 한방 약재로 쓴다는 지칭개는 일부 지역에서는 이른 봄 된장국으로 끓여 먹기도 한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지칭개는 밭에 나는 잡초일 뿐이었다. 만약 지칭개 된장국을 먹어 봤다면 이른 봄 지칭개가 좀 더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지칭개 된장국 궁금하다. 식물을 알아가는 건 여러 문화를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지칭개가 한 번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안 보이던 지칭개들이 자꾸 눈에 띈다. 매일 걷던 그 길에서 말이다. 잡초 제거가 빠른 서울에서는 지칭개를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숭례문 옆 하늘 담은 연못 앞 화단에서 커다란 지칭개를 발견했다. 지칭개는 계속 그 자리에서 커가고 있었는데 이제야 내가 찾은 것뿐이다.


바삐 지나쳤으면 보이지 않았을 지칭개처럼 사람도 그런 것 같다. 한 동네에서 10년을 이웃하고 살았지만 모르던 사람을 미용실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고 나면 ‘우리의 동선이 이렇게 같았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자주 보게 된다. 그럴 때면 흑백이던 세상이 칼라로 변하는 현상을 느낀다. 얼마 전 읽은 그림책 <뒷집 준범이>에서 동네 아이들과 준범이가 친해지면서 준범이의 세상이 칼라로 변해가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무채색의 세상이 칼라로 변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칼라는 연한 색으로 머물기도 하고 관계가 지속될수록 진하게 색깔이 입혀지기도 한다. 때로는 진했던 색깔이 바래져 색채가 뭉그러진다.


잊고 있던 지칭개가 다신 내 눈에 들어왔듯이 멀어진 그 친구와도 다시 웃으며 연락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다리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지만 , 섣불리 다가가기보다는 지켜봐 줘야 할 때도 있다. 다만 그 시간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색채가 바래지지 않게 말이다.


지칭개

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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