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이 남아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책을 읽으려고 창룡문 근처 카페에 왔습니다. 안데스 음악이 흐르는 안데스문화원카페에 가려다 오늘은 그 옆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커피를 들고 2층 창가에 앉았는데 화분들이 보입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가에 있는 금전수 화분에는 특이하게 글씨가 쓰여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카페 안데스?'
옆에서 먼저 카페를 하시던 안데스 사장님이 개업 선물로 주셨나 봅니다. 안데스 음악을 사랑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담긴 화분을 보면서 그 사장님의 큰 그릇을 생각합니다. 카페를 하고 있는 데 옆에 동업종이 들어오면 마냥 좋지만은 않을 텐데 이렇게 개업화분도 보내신 거 보면 그 사장님 저보다 훨씬 큰 사람이신 듯합니다.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떨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렇게 축하해 주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화분 선물을 보면서 2주 전 혜화동 소원책담을 찾아갈 때 사 갔던 해바라기가 생각납니다. 처음 방문하는 길이라 식물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이른 시간 문을 연 꽃집에서 데려갈 만한 식물이 딱 눈에 띄지 않아서 노란 해바라기를 골랐습니다. "기다림, 일편단심"같은 꽃말보다는 노란색이 주는 강렬함이 좋았습니다. 사장님이 진한 파란 포장지에 싸 주셨어요. 노랑과 파랑의 대비... 카페에 있던 어느 분 말씀처럼 고흐의 강렬함이 느껴지는 색조화입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소원책담에 장미허브를 사 가서 창가에 있던 시들어가는 화분들을 정리하고 분갈이를 해 드렸습니다. 알고 봤더니 소원책담 사장님하고 오래전 잠깐 책 읽기 동지였더군요. 몇 년 만에 만난 반가움과 함께 그때보다는 조금 더 성장한 나를 느낄 수 있어서 오랜만에 오지랖을 조금 부려 보았습니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있으니 아마도 잘 클 듯합니다.
식물을 선물하는 건 많이 고민되는 일입니다. 잠깐 보고 마는 절화 꽃다발보다는 화분을 선택할 때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지난 연말 마니토 뽑기에서 내가 준비한 화분을 고르고 난감해하던 J샘이 떠오릅니다. 저도 당황했습니다. 오래 기르던 수국이 회생이 어렵다던 H샘의 말이 떠올라 생일에 수국을 분갈이해서 선물했더니 많이 좋아했던 기억도 납니다. 식물을 선물하는 건 다른 선물보다 그 사람의 취향을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많이 고민되겠지만 새로운 곳을 방문할 때 저는 계속 식물을 준비할 것 같습니다. 식물이 가진 생명력이 그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그 식물이 자라듯 그 사람의 일도 잘 되길 바라면서요. 물론 식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먼저 알게 되면 선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그 식물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못 할 일이니까요. '내가 선물하면 앞으로는 좋아할 거야.' 하는 생각은 수요자중심 선물이 아니라 공급자중심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