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한마디에서 무수한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이 부모라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36개월이 되도록 엄마, 아빠, 응을 제외하고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던 아이는 그간 못했던 이야기들이 마음속에 가득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쉴 새 없이 입을 종알거리며 알아들을만한 이야기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들을 뒤죽박죽 섞어가며 쏟아낸다.
그렇게 알아들을만한 말과 알아듣지 못할 말 사이를 헤매며 대화인지 선문답인지 헷갈리는 문장들을 서로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절로 탄성을 지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을 글로 엮어 아이가 성장한 뒤 같이 읽어보는 것도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앞으로 감탄과 감동의 순간들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소소하게 기록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식사와 수면은 엄마와, 목욕과 독서는 아빠와 함께하는 것이 아이의 삶을 관통하는 어떤 룰과 같았을 테다. 아이가 편안함을 느끼고 원했기 때문에 그런 역할분담이 우리 부부에게 자연스레 고정된 채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에게 그것이 익숙해졌듯 우리 부부에게도 그것은 익숙한 역할이었다. 하여 나는 목욕은 당연히 아빠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간 목욕은 아빠와 함께 하겠다며 울고불고 떼를 쓰던 아이의 모습은 오간데 없이 너무나도 쿨하게 괜찮다고 말하며 욕조에 잠겨 거품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특함과 시간의 흐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아빠가 없을 때는 언제고 엄마가 옆에 늘 있을 거라는 부모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는 아이의 순수함에 어찌 해악을 끼칠 수 있을까. 아이 앞에서 무장해제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아이는 어떤 눈으로 부모를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아이의 세상에 아직 상실감이 자리잡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어찌 세상 일이 그렇게 아름답고 순탄하기만 하겠는가. 시간의 유한함과 고정 불변하지 않은 여러 상황들은 미래를 알 수 없게 만드는데 크게 한몫을 한다. 아빠가 없을 때는 엄마가 옆에 있고, 엄마가 없을 때는 아빠가 옆에 있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느냐만, 그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장담을 쉽게 하는 사람은 장담하는 것의 무게에 반비례해 가벼워질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 무엇보다 맑고 투명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한 다짐을 해 볼 수는 있을 테다. 그래 우리가 늘 너의 곁에서 너의 세상을 지켜주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