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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Aug 03. 2023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복날에 백숙>


뜨거운 여름, 3번의 복날마다 등장하는 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백숙'이다.


여든 넘은 시어머니는 지금도 시장에 가서 매번 닭을 사다 오랜 시간 푹 익히시는데.

다리도 아프신데 더운 여름 굳이 시장까지 가서

토종닭과 비싼 녹두, 한약재료 등등을 사다

한 시간 넘게 끓이는 정성을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배민‘에 시켜 먹을 수 있는 닭요리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수고를 하시는지 말이야,

그것도 초복, 중복, 말복 세 번씩이나.


솔직히 익힌 닭의 쫄깃하고 맛난 부위가 퍽퍽 살보다 현저히 적기에 먹다 보면 금새 질렸다.

한 두 달 안에 세 번이나 먹으니 느끼하고 물리기도 했고,

백숙보다 그 육수로 끓인 닭죽이 훨씬 맛있어서

죽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여름 보양식 먹다 더워 디지겠구만,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 세월이 쌓이다 보니 이젠 알아서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다.

힘드시니 안 해주셔도 그만이지만 얻어먹을 수 있을 때까지 먹어보자는 욕심이 들었다.

앞으로 이 귀한 보양식을 몇 번이나 얻어먹을 수 있을까,

어머님이 안 계시면 내가 하거나 식당에서 사 먹어야 하는데 그건 좀 별로다. 반백살의 나이에 어른이 해주시는 보양식을 얻어먹을 수 있는 것도 솔직히 복이지.


자금은 재개발이 되어 사라진 옛 시댁 한옥 마루에서

땀 흘리며 백숙을 먹은 후 닭죽으로 위장의 빈 운 다음 시원한 수박까지 먹고나면,

올 여름도 잘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그것이 그리 감사한 일인자도 모른 체 이잰 좀 물린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이제야 좀 철이 드는걸까?




올해도 여름이 되자마자 이제 힘드시니

백숙은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렸지만,

너희를 먹이는 것은 나의 운명이자 보람이라도 되는

시어머니는 올해의 초복도 역시나 백숙으로 여셨다.

별일없다면 중복,말복도 그러할 것이다.


닭 퍽퍽살이 아무리 질기더라도 질겅질겅 씹고,

배부르게 닭죽을 퍼먹을 것이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만든 이의 행복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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