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버이날 저녁모임 때문에
단체카톡이 부지런히 울렸습니다.
시어머님을 위한 식사자리지만 자식들이 모이기 편하고 넓은 곳으로 섭외를 해야 합니다.
시댁과 가까이 사는 덕에(?) 올해도 제가 식당을 정했는데요, 영화사를 다닐 때 자주 회식장소로 이용했었던 곳을 추천했습니다.
아주버니를 비롯해 연세 있으신 남자들은 여자들 같은 눈치가 없어서 그런지 식당 음식이 맛있네, 없네, 비싸네, 주차가 어쩌고 불평들이 많습니다.
애써 고민해 고르고 골라 예약한 사람 입장에선 참으로 맥이 빠지는 일이죠. 신혼 때 그런 말을 들으면 속상했지만 이젠 저도 능글능글해져서 농담처럼 그럼 직접 예약하시라고 말합니다.
시댁식구들이 내 가족 같은 느낌이 들 때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막내이니 윗분들과 나이차이도 많고, 영화계라는 다소 특이한 분야에서 일하기에 지극히 평범한 시댁식구들과는 대화가 통하질 않았어요.
답답해서 머릿속으로 항상 언제 집에 가나 애타는 마음뿐이었죠.
남들이 이리로 가라고 하면 "왜 그래야 되는데?'라고 삐딱선을 타는 성질이라 보수적인 한국중년남자들과 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으니까요.
왜 저런 보수적인 남자의 비위를 맞춰주는지 형님들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괜찮은 척하면서 시댁 식구들과 마주친 세월이 어느새 20년이 넘어갑니다.
명절 때 고스톱을 친 횟수만큼 친해졌고, 이제 좀 가족처럼 편하게 다가옵니다.
긴 세월 동안 한 번이라도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는 부부가 있을까요. 저도 그랬고, 형님 커플들도 지지고 볶아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같은 여자라 그런지 형님들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겉보기엔 세상 강해 보이는 맏형님은 처음에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알고 보니 속이 따뜻해서 저보다 10살 정도 많은데 이젠 언니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제가 오글거리는 표현을 못하는 상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맘은 모르실 겁니다.
사는 게 팍팍하고, 내 맘 같지 않은 남편 비위를 맞춰가며 사는 맏형님을 볼 때 나 같으면 이혼한다! 생각하기도 하고, 이혼도 돈이 있어야 하지, 그래도 둘이 힘을 합하는 게 낫지 않나... 하고 생각이 오락가락합니다.
결국 내 코가 석자다, 로 끝이 나긴 하지만 말이죠.
바지런한 맏형님은 토요일 어버이날 모임에 시어머니 드실 반찬을 여러 개 만들어왔습니다.
일요일마다 시댁에 가는 우리 식구는 다음날 또 시댁에 갔어요. 맏형님이 해온 반찬과 식당에서 남아 싸 온 음식들로 한 끼를 잘 먹었습니다. '요알못'인 내가 아니라 연장자인 가족이 만든 음식은 무조건 맛있습니다. 상대를 위한 마음이 조미료로 들어가 있으니까요.
맏형님이나 시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먹을 때 강한 엄마인척 하는 태도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기분이 듭니다.
척박한 세상에 나도 응석을 부릴 수 있는 누군가가 아직도 있다는 기분과 안도감.
그러니 형님들, 시어머니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