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설날의 손만두>

by 선홍


라떼'나 지금이나 명절에 모인 어른들의 잔소리 폭격은 여전한가 보네요.


어른이 되어 알게 된 거지만, 오랜만에 명절날 모인 자리는 어른들도 뻘쭘하고 불편하긴 마찬가지더란 말씀.

괜히 잔소리하면서 불편함을 메꿔보려는, 혹은 젊은 친구들과 급 친해보고 싶긴 한데 대화소재를 몰라 생기는 부작용 같은 겁니다.

그러니 별 뜻 없이 하는 헛소리(?)로 여기고 흘려듣는 재주들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어른들이야말로 명절이 편할 수가 없잖아요. 여기저기 용돈 줘야 할 곳은 많고, 친구 만난다는 핑계로 외출도 못합니다. 남자들은 산소 가야지, 명절 스트레스받는 와이프 눈치 봐야지, 여자들은 갑자기 펼쳐진 막노동의 현장에서 정신이 완전 가출 중인데요.


저야말로 손 큰 시어머니를 만난 덕에 '명절포비아'에 걸려버렸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라고 써붙인 플래카드만 봐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라면 말 다하지 않았나요.

물론 예술일기에다 뒷담화를 쓰는 건 필수코스죠. 그 덕에 그럭저럭, 수 십 년간 명절을 잘 버텨왔는데요.


명태 전, 고구마 전, 김치전 녹두전, 동그랑땡, 두부 전... 등등 인정 많은 시어머님은 온 동네 사람 다 먹일 듯이 많은 음식 준비를 하셨습니다. 설날은 더더욱 싫었어요. 많은 음식들에 손만두까지 추가되었으므로!

참고로 결혼 전까진 손에 물이라곤 닿지 않는 독신녀의 삶을 살았었기에 결혼 후 명절마다 무슨 족쇄를 차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애들이 어릴 때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라는 동화책을 사준 적이 있었어요. 손 큰 할머니가 온 동네의 숲 속 친구들까지 먹일 거대한 만두를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호랑이, 여우, 온갖 새들까지 다 몰려와 힘을 합해 만두소를 삽으로 종일 떠 넣어도 안 끝날만큼 거대한 만두를 말이죠!


동화에 나오는 땀 흘리는 동물이 저로 보이는 착각이 들 만큼 명절 만두 만들기는 고역이었는데요.

만두피를 만들기 위해 반죽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팔이 빠질 것 같을 때쯤 큰 덩어리가 완성되고, 그걸 다시 잘게 나누어 동그랗게 밀대로 하나하나 밀어야 완성되는 만두피.


동화 속 할머니처럼 손 큰 시어머니는 혼자서 산처럼 쌓인 만두소를 완성하셨고, 온 가족이 들러붙어 만두피를 만든 후, 그 안에 만두소를 부지런히 채웠습니다.

부산에서는 떡국에 고기고명만 얹는데 괜히 서울로 시집와서 만두까지 만든다고 투덜대면서 말이죠.


다들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아 뒤로 갈수록 점점 왕만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만두는 익히면 여지없이 속 터진 만두가 되어 버렸고요.


이상한 점은 우리가 만든 만두가 파는 것보다 못생기고, 만두피도 두꺼웠지만 맛있었다는 점입니다.

만두소 김치맛에 따라 해마다 다른 맛을 선사하는 손만두를 시어머니가 계속 쪄오시면 연기가 모락모락, 뜨거운 돼지고기와 김치맛이 입안에 한가득 찼습니다.

낡은 한옥에서 가족이 모여 앉아 수다 떨면서 만든 만두덕인지 다들 별 탈 없이 한해를 보내왔네요.


낯가리는 인간이라 결혼해서 서먹하기만 했던 시댁식구들과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심어준 것도 손 큰 시어머니의 만두덕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다들 나이가 들어 만들지 않게 된 만두지만 아주버니, 동서 등과 함께 손 큰 시어머니 뒷담화를 하며 만두 만들던 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제는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고, 생각만 해도 삭신이 쑤십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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