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저는 시어머니를 자주 찾아뵙는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 중입니다.
너무 오랜 세월 그런 척하고 살았더니,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죠.
제20대 때가 그 유명한 X세대, 신세대였어요.
그 당시 여대생이라면 가부장적인 사회에 반항하듯 흡연하고, 사르트르에 대해 논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기몰이를 시작했기에 작가처럼 바에서 혼맥도 자주 했고요.
나도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르처럼 계약결혼을 해야지, 다짐했었건만,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제가 아직도 이혼 안 한 것이 신기하다고 합니다. 저도 신기해하던 참입니다.
결혼은 하기 싫고 이해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있는 가풍을 이해가 안 된다고 무시할 순 없잖아요.
다행히 인내심 하나는 있어서 참을 수 있었습니다. 참다 참다 뚜껑이 열리면 그날은 부부싸움이 벌어지는 날이었죠.
그래 놓고 시댁 가면 분위기 맞추느라 웃는 척, 스스로가 비굴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부산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싫어서 어렵게 서울까지 와서 자리 잡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시댁이야말로 '가부장제 최종보스'였습니다.
제사 때 산더미같이 많은 음식을 하느라 여자들 허리가 휘는데도 남자들은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거죠.
그렇게 고생한 여자들은 제사상에 남자들 밥상까지 차려놓고 다 잡술 때까지 기다립니다. 부글부글...
에이, 조금이라도 쉬자 하는데 디저트 준비 안 한다고 성화십니다. 고생한 여자들은 지저분해진 밥상에 남은 반찬으로 식사를 하네요. 부글부글...
허기를 채우고 나면 관광지 유명식당처럼 거대한 설거지 산이 기다리죠. 앗, 이때도 남자들은 손 까딱하지 않네요! 부글부글...
제가 잔소릴 해서 그런지 우리 남편만 가끔 설거지를 하는데,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명절마다 속이 용암처럼 끓어올랐으니 가족모임 자체가 싫어졌어요.
착한 아들인 남편은 아내가 화산재가 될 지경인데도 제사음식 줄이자는 말조차 시어머니에게 안 하더라고요.
남편님들, 와이프 입장에서 이게 얼마나 속상하는 일인지 아실까요?
시어머니와 짜고 연극이라도 한판 벌이시길 추천드립니다. 바뀌는 게 없더라도 '저 남자가 내 생각을 하긴 하는구나' 아내가 감동하게 만들 순간이에요!
착하고 눈치코치까지 없는 남편은 그 어떤 연기도 하지 않았기에 마음속 서운함이 크레이프케이크처럼 켜켜이 쌓여갔죠.
그러던 중 가부장제의 핵심인물이었던 아주버님이 웬걸, 반항을 하셨습니다. 제사를 그만두든 줄이든 하자고요!
세상에나, 속으로 아주버님을 미워했던 시간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 사랑과 존경이 샘솟았어요. 그 한마디 했다고.
'착한 아들' 출신인 남편에게 저는 여전히 2순위입니다.
긴 세월 동안 시어머님을 이해하는 마음은 넓어지는데, 남편을 이해하는 길은 좁아집니다.
효자와의 결혼을 비추합니다.
저는 대놓고 불평할 수 없는 이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원망하는 대신, 나 자신을 위해 집이 아닌 카페로 펜과 노트를 들고 매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