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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 나름 선생님 Oct 26. 2022

이별 보험

똑똑. 똑똑똑. 똑똑


성격이 나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성미 급한 사람이었다면 ‘똑똑, 똑똑똑’ 한 다음에 ‘똑똑똑똑’을 했을 것이다. 나는 조금은 안심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손에 든 장바구니를 흔들며 말했다.


“오빠, 오늘은 호박전에 김 넣은 계란말이 해먹는 거야. Go!”


말투가 헤어진 그녀와 똑같았다. 우리는 김구라가 나오는 ‘라디오스타’를 보며 내친김에 김치전까지 몇 장 부쳐먹고 있었다. 나는 신문지를 깔아놓고 바로 부쳐먹는 김치전을 좋아했고, 뭔가를 먹을 땐 꼭 연예 프로그램을 봤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나는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낯설지만 헤어진 그녀와 닮은 데가 많은 그녀는 내 발톱을 잘라주었고 나는 그녀의 귀를 파주었다. 나는 충분히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요일이었다. 우리는 CGV로 갔다. 나는 롯데시네마는 웬만해선 가지 않았다. 그곳의 팝콘은 너무 맛 없었다. ‘연애의 온도’란 영화를 보고 나자, 나는 제목이 비슷한 ‘연애의 목적’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DVD 방에 가서 봤고, 두 편의 영화를 보자 나는 글이 쓰고 싶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카페에서 글을 쓰는 동안, 조용히 책을 꺼내 읽었다. 이틀 전에 호박전을 부치던 그녀와 내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녀는 다른 사람이었다. 단지 그녀들은 일주일 전에 헤어진 내 옛 여자친구를 연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궁에 갔다. 고궁을 나왔을 때 날씨가 흐렸다. 하늘은 원래 흐린데 가끔 맑아지는 것인지, 원래 맑은데 이따금 흐려지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고궁 안에 있는 미술관이 가고 싶어졌다. 예전에 우리는 이 고궁에 왔었고, 그때 날씨는 흐렸었고 우리는 미술관에 가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림을 감상한 것이 아니라 미술관에 깃든 흐린 날씨와 우리의 약간은 젖은 마음을 감상한 셈이었다. 우리는 손을 잡았다. 그녀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빛은 오른쪽에만 있는 내 보조개를 사랑했다. 내 눈빛은 한없이 흔들렸다.

 나오는데 그녀는 스커트 한 쪽을 붙잡고 있었다. 어디에서 묻은 것인지 몰라도 얼룩져 있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근처의 가장 가까운 백화점으로 갔다. 나는 그녀에게 하늘빛 원피스를 사주었다. 나는 돈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 그녀는 하늘과 같았다.



지독히 잠이 오지 않는 쓸쓸한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지금 내 있는 곳과 마음을 묘사하며. 그리고 내가 그녀와 사귀고 있던 동안 보험 들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제출했던 보고서의 번호까지. 그들은 그 보고서를 참고해 지금 내 처지에 맞는 또 다른 그녀를 보내줄 것이다. 이제 그녀와 헤어진 지 3달째가 되었고, 나는 또 다른 그녀들을 17번 불렀다. 나는 그것의 1.5배인 26번의 연기를 다시 누군가를 위해 해야 했다. 그녀의 가슴 사이엔 푸른 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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