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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 나름 선생님 Oct 26. 2022

시벨리우스-1

세계의 온도는 똑같다. 이제 온도란 말은 사어(死語)가 되었다. 


다만 물 속의 온도는 물 밖의 세계보다 낮았다. 다행히 물은 아직 순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냇가에 지어진 집은 수백 채였다. 나무로 바닥을 깐 집도 있지만 지붕과 벽만 있고 바닥 없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돌과 나무로 시내의 바닥을 높인 다음 흐르는 시냇물 위에서 잤다. 


마을엔 대체로 10대의 아이들만 살았다. 시냇물 속에서 잠이 깬 아이들은 몸의 물기를 따로 닦지 않았다. 습기는 머물렀는지도 모르게 금세 소실됐다. 발로 얼굴을 대충 씻은 석준과 아이들은 ‘바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바람을 일으키는 곳이, 그곳 외에 또 있는지 석준은 몰랐다. 세계의 온도는 똑같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람은 불지 않았다. 온도 자체가 비이상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바람이 멸종했을 뿐이었다. 

마을을 벗어난 후 나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을엔 시냇물이 흐르고 태양도 내내 쨍쨍하기 때문에 나무들이 매우 높이 자랐다. 하지만 ‘바람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사이엔 나무도 마을도 낯선 사람도 구름도 없었다. 아이들은 그 길 위에서 키스도 하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다. 

석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석준에겐 잠이 없었다. 잠을 자지 못해 낮에 다른 일을 못할 정도로 피곤한 것은 아니었다. 피곤은 시간이 지나면 잠을 자지 않아도 풀리곤 했다. 다만 불면은 그에게 쓸데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불면은 석준의 개성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물론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었다. 석준이 잠을 자지 못하는 것도 일부러 자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그에게 잠이 없을 뿐이다. 


그곳을 ‘지하’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공장’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또는 ‘진짜 세계’ 또는 ‘신성한 곳’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석준을 포함한 어떤 아이들은 그곳을 ‘바람이 있는 곳’, 줄여서는 ‘바람’이라고 불렀다. ‘바람’이 어디까지를 말하는지는 불분명했다. 아이들이 둘러앉아 ‘바람’을 일으키는 공간만 말하는 것인지, 아이들이 일으킨 바람이 불고 있을 그 안까지 포함한 것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었다. 

이르게 도착한 아이들은 신전처럼 생긴 건물 바닥에 가만히 누워있기도 했고,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석준이 사는 마을 외에도 여러 마을의 아이들이 ‘바람’에 왔다. 친한 아이들은 허리를 부딪히며 반가워했다. 아이들은 매일의 노동에도 지친 기색 없이 밝기만 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당연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들의 부모님과 조상들도 모두 그런 마음으로 바람을 일으켜왔다. 

석준은 불면이란 자신의 개성이 불편했다. ‘바람’의 입구에서 석준은 밝은 표정의 아이들을 시무룩하게 바라보았다. 많은 생각은 그의 얼굴을 늘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비밀로 간직해야지 절대 남에게 말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이제 바람이 없는 지구 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서 중 하나였다. 



사면이 열주로 된 신전 바닥에 ‘바람’으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었다. 한 명씩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했다. 한 명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모두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질 정도로 계단은 좁았다. 손 잡을 수 있는 난간이 있긴 했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이곳에 왔던 모든 사람들은 절대 ‘손’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손은 오직 바람을 일으킬 때만 쓰여야 했다. 어른들도 이곳의 기원은 몰랐다. 물론 학교는 있었지만 먼 옛날처럼 역사 과목은 없었다. 과거를 알려주는 역사는 현재를 우울하게 할 뿐이었다. 

20m 남짓의 계단을 내려오면 다시 대지 같은 너른 바닥이 나왔다. 너른 바닥 곳곳에는 기괴한 건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지극히 인위적인 분위기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석준은 그것들을 거대한 나무 뿌리로 착각했었다. 사람들은 정확한 용도도 모르면서 그것 역시 신전이라 불렀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다시 몇 갈래로 갈라졌다. 각자 원하는 곳의 뿌리 모양의 신전 속으로 들어갔다. 매번 똑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때그때마다 내키는 곳을 선택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지하 삼 층까지 갈라졌다. 각 방에는 약 백 명 정도의 아이들이 들어갔다.


거대한 풀무였다. 한치의 틈도 없이 꽉 막힌 곳이라 공기의 흐름도 매우 느린 곳이었다. 아이들은 의무적으로 이곳에 적어도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는 있어야 했다. 배가 고파 중간에 음식을 먹으러 나가는 것은 자유였다. 다만 음식은 신전과 ‘바람’에 두지 못했다. 바람을 일으키는 중에 음식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그저 귀찮기 때문은 아니었다. 지금의 아이들도 이제 어른이 된 예전의 아이들도,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조금이라도 바람을 더 일으키는데 힘을 쏟고 싶어했다. 

천진하게 웃던 아이들도 거대한 풀무에 둘러앉으면 순식간에 엄숙해졌다. 나무둥치 모양의 낮은 의자에 앉은 아이들은, 그 앞에 놓인 부채를 팔도 굽히지 않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바닥에 뚫린 사람 얼굴만한 구멍을 향해 부채질을 시작했다. 옛날에는 인위적으로 바람을 만들기도 했었다고 한다. 물론 이곳 ‘바람’에서의 일은 아니다. 전기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만든 바람 같은 것은 이제 이 세계에는 없다. 세계의 온도가 평평해진 시점과 사람들이 전기를 버린 시점은 거의 일치했었다고 옛 어른들은 종종 얘기했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몸으로 만든 바람, 즉 근육과 땀으로 만든 바람이 아니면 신이 내린 저주라고까지 여겼다. 부채질은 일정한 속도로 유지됐다. 일정한 템포의 부채질은 아이들을 금세 가수면 상태에 빠져들게 했다. 하지만 길게는 5년 가까이 해온 일이기 때문에 졸면서도 부채가 구멍 앞을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석준이 부채질하고 있는 지하 방에는 약 백 개의 구멍이 있었다. 백 개의 구멍이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는지 아니면 모두 각각의 배출구를 갖고 있는지조차 아이들은 몰랐다. 그들의 부모도 몰랐었고, 이제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석준은 가수면 상태에 빠진 아이들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평화로워 보이기도 했고 지쳐 보이기도 했다. 또한 지루해 보이기도 했고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석준이 부채질에 대해 반감이나 허무를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에겐 선잠조차 없을 뿐이었다.  

석준은 다시 고개를 돌려 구멍 속을 쳐다봤다. 그가 ‘바람’에 온 것은 이제 3년째가 돼가고 있었다. 그는 구멍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는, 바깥으로 빠져 나오는 바람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다른 모든 인간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제 몸으로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일으켜 구멍 속으로 불어넣고 싶어했다. 이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왜 숨을 쉬고 있지 란 무의미한 생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후 세 시가 되면 먼 곳에서 희미하게 종 소리가 들려왔다. 어른들이 사는 세계에서 치는 종이었다.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부채질을 그만두고 옆에 있는 돌을 들어 구멍을 막았다. 물론 두 발로 사용해서였다. 기껏 구멍 속으로 불어넣은 바람을 무의미하게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누구도 제 몸을 향해 부채질은 하지 않았다. 부채질은 ‘바람’을 위해서만 써야 했다. 인간의 손목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더 이상 부채질을 할 수 없게 되면 ‘바람’을 떠나야 했다. 그렇다고 ‘바람’에 오래 있기 위해 손목을 아끼지는 않았다. 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바람을 일으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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