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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 나름 선생님 Oct 26. 2022

세계노래자랑

노래 배우는 것이 대유행하게 된 것은 이태원 호텔의 이마에 걸려있는 ‘4살 14일’이라 저 시계 때문이다. 오늘로부터 4년 14일 전, 그 날은 전 세계에 한꺼번에 비가 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지구가 한 바퀴 도는 24시간 동안 전 세계의 지역 별로 비가 내렸다. 그것은 지구에서 증발한 물이 먼지와 만나 내린 비가 아니라, 우주에서 내린 비였다. 그러니까 유성우였다. 

 지구는 식기세척기 속의 그릇처럼 돌아가며 유성우를 맞았고, 사람도 사람이 사는 집의 지붕도, 사람 근처에 사는 가로수도 동물원 안의 동물도 바깥의 동물도 모두 빠짐없이 유성우를 맞았다. 유성우는 우주의 작은 천체가 대기권에 닿으며 불타 오르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유성우의 아주 미세한 조각들을 흡입하고 마시고 몸에 붙이고 다녔다. 당시 거의 모든 지구인들이 그 장대한 우주쇼를 봤다. 그리고 사람들은 동물들은 식물들은 더 이상 후세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만삭이던 임산부들도 모두 자연스럽게 유산이 됐다. 그러니까 유성우가 떨어지기 전날에 태어난 아이들이 지구 상에서 가장 어린 사람들이었다. 늙은 사람들은 인류의 마지막 젊음을 지켜봐야 했다. 이태원 호텔이나 그 밖 어디에도 걸린 4년 14일이란 표시는 지구인 중 가장 젊은 사람의 나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류의 평균 연령은 높아져갔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고 사람과 생물만 멸망한다. 물론 당장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가장 젊은 사람들이 늙으면, 그들은 이 지구 상의 마지막 늙은이들 또는 최후의 인간들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 인류가 멸종하려면 어쩌면 약 75년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요즘 평균 수명은 80세니까. 

지금 살아있는 80억 명의 인구가 최후의 인류란 생각이 들자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낭만적이 됐던 것이다. 우람한 비석이나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보자는 의견도 초창기에 나왔으나 무의미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후세에 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현실성 있는 의견은 지구의 의사들은 못 고치는 불임병이니 우주의 의사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우주선에 태워 보내자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실행됐다. 

 그나마 현실성 있다는 계획이 ‘인간의 불임병를 치료해줄 우주 의사를 찾는 것’인 상황에서, ‘어차피 망하는 거 아무려면 어때’라는 마음가짐이 곳곳에서 검버섯처럼 피어났다. 전쟁과 폭력, 사이비 종교와 세기말적 사상들 출몰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그때 ‘세계노래자랑’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전체 인류 앞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를 기회를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마지막까지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었다. 

방송은 하루 24시간 온종일 진행됐다. 방송의 대원칙은 전 세계 80억 명의 사람들이 모두 방송에 나와 한 번씩은 노래를 부르다는 것이다. 중간에 끊는 일도 없었다. 인생의 최후의 노래가 될지도 모르니 완창이 보장되었다. 사람들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모두 열심히 노래 연습에 매달렸다. 현재까지 가장 유명한 노래 연습은 일본에서 참가한 만인교향곡이었다. 자작곡이든 연주곡이든 제한은 없었다. 일본에서는 만 명이 한 팀으로 참가했는데, 베토벤의 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을 18분 동안 불렀다. 그럴 만도 했다. 예전 CD의 러닝타임이 80분이 된 것은 베토벤 합창교향곡은 한 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나의 경연순서는 운 좋게도 2,085,092,329 번째였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었다. 최소한 3분은 노래를 불러야 했고 나머지 2분은 하고 싶은 말을 하든 아니면 노래를 계속 불러도 되었다. 하루에 288명이 방송의 무대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2,085,092,329번째의 순서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돌아오지 않을 순서였다. 하지만 인류애는 따뜻하여 처음에 사람들은 독창만 했지만 뒤 순서 사람들을 염려해 합창을 하는 쪽을 택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처음에 선택한 곡은 한국의 걸그룹인 달샤벳의 ‘내 다리를 봐’란 노래였다. 킹 크림슨의 ‘Epitaph’ 같은 노래가 분위기상 맞을 것도 같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우중충한 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명랑하게 인생을 끝내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를 포함해 현재 살아있는 모든 인류의 삶은 전과 변함이 없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를 마지막으로 인류는 뒤도 없고, 뒤도 없으니 앞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게 된다. 

 헌데 내 나라의 한국 대통령은 국민들과는 상의도 없이 ‘한국은 전 국민이 모여, 단 한 곡을 부르겠습니다’라고 선포해버렸다. 선포되자마자 다양한 논쟁들이 들불 번지듯이 일어났다. 대통령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공산주의자이자 전체주의자라고 모욕하며 국민들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했다. 반대로 대통령의 의지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이제 한국민들은 어떤 한 곡의 노래를 부를지 건설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라고 했다. 정말 고민되는 문제였고 뻔하게 애국가나 노사연의 ‘만남’을 부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었다. 헌법소원을 내는 사람도 있었고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 또 파업과 데모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국회에서는 국민투표를 하자는 논의도 활발했다.

 사실 한국 대통령이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인류의 역사를 끊기에 한 주범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웃나라를 혼내주기 위해 우주 무기를 개발 중이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데 사실은 올해에도 내년에도 똑같은 길을 다니는 것이다. 영원히 노선이 변하지 않는 지하철처럼. 지구의 공전 궤도에는 유성우 자리들이 있는데, 지구는 매년 8월 12일에 페르세우스 유성우 자리를 지난다. 페르세우스 유성우 자리는 1862Ⅲ란 혜성의 잔해가 있는 곳으로, 지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지구의 대기와 혜성의 잔해는 부딪혀 유성우 쇼를 연출하는 것이다.

 한국의 ‘페르세우스’ 계획은 페르세우스 유성 자리에 화학물질을 발포하는 것이었다. 유성먼지들에게 잘 결합되게 만들어진 화학물질들은 생체에 유해한 독극물로 변한다. 다만 이것은 테스트였기에 한국은 독극물을 거의 99.9% 희석화시킬 수 있는 반대 화학물질도 넣었다. 한국은 0.1%의 독극물 성분이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테스트하려 했던 것이다. 활발한 대기의 움직임 때문에 정밀한 타깃은 불가능하다, 대략 내년에 살포된 독극물과 만날 지역은 사하라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헌데 뭐가 잘못됐는지 유성먼지와 결합된 화학물질과 중화를 위한 반대 화학물질이 결합된 유성우는 지구의 대기와 부딪히며 대기권에 골고루 퍼져나가며, 지구 전체에 불임의 유성우를 뿌렸던 것이다. 


오늘도 노래 학원의 열기는 뜨거웠다. 아직 한국의 모든 국민이 정말 한 곡을 노래를 부르게 될지 어떻게 될지 결정된 바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노래 연습에 열심이었다. 옆의 방에선 미디 작곡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음대가 의대보다 더 인기가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고 사람들은 얼굴보다는 노래에 더 큰 삶과 판단의 비중을 두었다. 

 요즘 내가 연습하는 곡은 역시 한국 가요로 김수철의 ‘젊은 그대’였다. 최근에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그녀는 나보다 네 살이 많은 서른 여덟이었다. 나는 지금의 그녀도 아름답지만, 젊은 그녀를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비록 내 딸이 아닌 그녀의 딸이 있더라도 볼 수 있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사진 같은 것은 소용 없었다. 나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얼굴을 원했다. 젊음을 원하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젊음의 가치는 점점 높아져 남자와 여자든 현재의 20대와 결혼하라면 정말 상위 1%의 매력도를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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