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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 나름 선생님 Oct 26. 2022

심해의 꽃

할아버지가 사랑을 만들었다는 것은 어린 시절 내 자랑이었다. 할아버지가 ‘창조주의 공간’에서 다른 여자 연구원과 바람이 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내 존경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사랑일지도 모르는 감정에 빠졌을 때, 나는 아무리 할아버지라 해도 이런 감정을 제대로 표현했을지 의심이 들었다. 나와 같은 의심에 젖어있던 여자와 나는 그래서 사랑의 조형물이 있다는 그 벌판으로 떠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사랑을 표현한 것도 조형물도 아니었다. 이제 세계에 남은 사랑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사랑이 있는 벌판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있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내린 뒤 지프차를 빌렸다. 우리는 무려 14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달렸다. 쉬는 동안에도 사랑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답 없는 상상 속에 빠져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바퀴 뒤로 시간은 먼지처럼 날렸다. 운전은 겉보기와 달리 터프한 데가 있는 그녀가 했다.

 풀들이 낮게 깔려 있었다. 사방으로 지평선이 아득하고 한쪽에는 아주 조그맣게 산맥이 늘어서 있었다. 머리에서 빛나는 자그만 설원이 뭉게구름보다 존재감이 더 컸다. 반대편 저 멀리에선 먼지바람이 일고 있는 듯 하지만, 너무 멀어 백 년이 지나도 우리 서 있는 곳에 이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따금 몹시도 바람이 부는 것을 제외하면 벌판은 아주 고요했다. 

 우리의 마음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들판에 불거져 나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수평적인 벌판에서 유일하게 툭 튀어나온 게 있다면 큰 바위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저것이 사랑일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바위의 생김새는 그저 비바람에 깎인 다른 바위들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화산 근처의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깔이 검고 보다 기괴한 모양인 것 말고는, 저것이 사랑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래도 두 손 꼭 잡고 바위를 향해 천천히 걸어나갔다. 


거창하게 말하면 꽃의 향기가 인간의 언어를 죽인 셈이다. 인간의 언어가 죽은 뒤 인간의 삶이 더 행복해졌는지 아니면 불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꽃을 발견한 사람은 심해의 잠수부였다. 말은 잠수부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정말 심해까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심해에 미친 사람이었는데 꽃을 피어있는 배를 발견한 것은 그의 나이 육십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심해까지 밀려온 배들은 가끔 있었지만, 새로 발견된 배의 놀라운 점은 꽃이 피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배의 수많은 방들에는 사람의 해골은 없고 이제 글자가 모두 물에 녹아버린 책들만 가득했다.

 심해의 꽃은 지상에 올라오자마자 봉우리를 활짝 피며 놀라운 향기를 퍼뜨렸다. 그 향기는 한 번 맡으면 꽃을 빼앗아 집에 심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심해의 꽃은 아주 놀라운 번식력을 보였는데 지상에 올라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심해의 꽃은 전세계로 퍼졌다. 그 뒤 벙어리와 난독증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보고에 의하면 심해의 꽃 향기가 인간 언어중추와 기억중추 중 일부를 마비시키고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언어 파괴는 한꺼번에 일어나지는 않았고 서서히 일어났다. 말과 글의 언어가 완전히 사라진 뒤의 영향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일단 그 동안 이루었던 많은 발전들이 전면적으로 후퇴할 터였다. 아나운서 같이 말로 먹고 사람들 몇 명 직업을 잃는 것 따위는 어디 가서 불행하다고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기 때문에 자신의 복잡한 생각들과 연구물들을 전할 수 없었다.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기존에 산처럼 연구결과물들도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심도 있는 논의 결과, 언어가 사라진 뒤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은 ‘감정의 상실’이었다. 언어는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감정이 있은 다음에 그것을 표현해줄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있은 다음에 커뮤니케이션이 있었고 감정이 있었다. 감정에 교류에서만 생겼고 처음부터 단독적인 감정은 없었다. 언어가 사라지면 감정이 사라지고 인간세계는 서로를 살육하는 지옥이 될 수도 있었다. 다른 생물들은 언어 이외에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지만, 인간은이 그렇게 되려면 몇 천 세대를 흘러야 유전자가 변할 터였다. 그때 이미 인간은 ‘만인을 향한 만인의 투쟁’으로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인간의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창조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미국 정부는 주도적으로 과학자과 엔지니어뿐 아니라 시인과 음악가들, 무용가와 영화감독,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에 대해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낸 사람들을 모았다. 가령 자식 셋을 모두 잃은 부모 같은 사람. 연구 중에도 중독이 완성된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연구실에서 내보냈다. ‘창조의 공간’ 연구진들이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나중에 누가 봐도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가장 단순하고 공감하는 형태로 감정의 조형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랑, 우정, 증오, 연민, 동정, 성욕, 죄의식, 열등감, 자존심 등 기본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았다. ‘창조의 공간’에서 오직 정신적 스트레스로만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그만큼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그들만큼 깊게 인간적 감정에 대해 숙고해본 사람은 없었다. 연구와 조형물 설치를 위해 남은 시간은 3개월이 채 안 되었다. 그리고 작업 마지막 주간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살면서 모든 조형물을 방문하게끔 하는 전통 의식을 만들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조형물이 왜 만들어졌는지조차 유전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다행히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창조의 공간’ 연구진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기억을 마치 내 기억처럼 갖고 있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그 촉박한 틈에도 바람을 피운 할아버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랑의 조형물이 있다는 이곳을 찾는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나는 바위를 쓰다듬어 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것은 그저 평범한 바위였다. 이것이 사랑인가? 어릴 적 북아프리카에 지어진 ‘증오’의 조형물은 본 적이 있었다. 감정의 조형물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설치됐다. 증오의 조형물은 한 눈에 봐도 명확했다. 고슴도치처럼 창을 온 몸에 꽂은 인간이 뫼비우스 띠를 돌고 있었다. 피는 창 끝에 묻어있지 않고 창이 꽂힌 그 인간의 몸에서만 흐르고 있었다. 

내 옆에 있는 여자는 지금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멀리 여행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백치가 돼가고 있다. 언어의 상실은 사람의 사고 능력과 감정 제어 능력을 점점 잃게 했다. 바위를 몇 차례 돌다, 나는 한쪽에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은 또 다른 조형물을 보았다. 그것은 바닥에 울퉁불퉁하게 새겨진 것인데 아마 한때 ‘글자’로 불리던 것을 추정되었다. 여기에 어떤 표시까지 해둘 정도이면 분명히 여기에 뭔가 있긴 있었다. 

 나는 글자 근처를 유심히 봤다. 결국 글자 아래의 땅을 조금 파보았는데 그곳에 ‘심해의 꽃’이 죽은 흔적이 있었다. ‘창조의 공간’ 연구진들이 처음부터 묻어둔 것인지 아니면 멀리서 모래바람이 불어 묻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전 세계에 퍼진 심해의 꽃은 1년 뒤에 갑작스럽게 모두 죽었다. 한해살이 꽃이었다. ‘심해의 꽃’은 보통의 꽃과 달리 죽은 뒤에도 그 형태를 그대로 보존했다. 다만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았다. ‘창조의 공간 연구진들은 결국 ‘심해의 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곤혹스러웠다. 세상에 남은 사랑은 이것 하나뿐인데, 그것은 내게 어떤 설명도 해주지 못해다. 나는 옆에 있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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