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eso? weshalb? warum?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 하루종일 “왜?”라고 어른들에게 되묻던 시절이 있었다. 그 대답으로 누군가는 만족스러운 답을 받기도, 혹은 “뭐가 자꾸 왜야!” 라며 꾸지람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독일에 머물다 보면 이상하게도 질문과 생각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마치 이곳의 공기가 질문으로 가득한 느낌이랄까. '아 이래서 독일에 철학자들이 많았나'라는 이유를 몸소 체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어린 시절 잠깐의 질문폭격기가 아닌 거의 평생 동안 질문하며 생활하는 독일인들..
아마도 한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과 자극이 적은 일상 덕분이라 생각된다.
대학생 시절, 독일의 모든 대학이 그러하듯 토론 중심의 수업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나는 의견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문하는 일이 드물었다.
반면에, 내 동기들은 나와는 달랐다. 때로는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지?' 싶을 때도 많았지만,
"Dumme Fragen gibt es nicht, dumm ist nur, wer nicht fragt."
(멍청한 질문은 없다,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멍청한 짓이다)
라는 독일 속담이 있듯이, 그들은 질문을 하는 것을 창피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들의 질문 방식이 낯설고, 때로는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질문하느라 수업시간이 다 지나가고, 말도 안 되는 생각들과 질문을 듣고 있노라니 시간낭비라고 느껴질 때도 많았다. '내가 저런 대화 들으려고 학교 왔나? 교수는 왜 수업은 안 하고 질문에 대답만 해? 저런 건 수업 외에 설명할 것이지' 궁시렁궁시렁 하면서 말이다.
예를 들어, 수업 중 교수님이 어떤 주장을 설명하면, 학생들은 곧바로 손을 들어 질문을 쏟아냈다. "이 주장의 근거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반대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등등. 아주 여러 방면의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답을 얻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통해 사고를 확장하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려는 것이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질문인 줄 알았는데, '깊은 이해를 위한 질문'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한 질문들
그 후로 어색하지만 나도 조금씩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나의 학습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더 나아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독일에서의 삶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할 때면, 나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이 "지금 뭐라는 거야?" 하며 웃곤 한다.
예를 들어, 한 친구가 "나 이 옷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몇 개 샀어."라고 하면 나는 "어떤 점이 너의 마음에 들었어?" 하고 묻는다. 또 한 번은 "이 카페 진짜 좋다!" 하면, "어떤 부분이 제일 좋아?" 하거나 "이 영화 정말 재미있었어!"라고 하면 나는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라고.
Hoxy.. 이게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너 T야?" 느낌인 건가. 껄껄
이런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때때로 당황하거나 대답을 망설인다.
한국에서 이런 질문은 때로는 지나치게 분석적이거나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겠지.
나는 질문을 통해 단순히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고, 대화의 층을 넓히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질문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
독일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학업 이상의 가르침을 주었고, 그로 인해 나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넓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계속 질문해 본다.
이건 왜일까?
wieso? weshalb? warum?
(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