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만 그 끝을 모를 뿐
모든 일에는 끝이 있고 그 끝은 다시 시작과 맞물려있다.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지난 1년여간 다시 취업준비를 하면서 불안하고 나를 의심하고 탓하다가도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는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올렸다. 내 불안은 끝이 어딘지, 끝이 있긴 한 건지 몰라서 비롯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부지런히, 일명 스펙 쌓기를 해내가면서 내 결정이 옳다, 기회는 온다, 올 거다, 와야만 한다는 말을 일기장에 써 내려가며 주술을 외우다시피 했다. 그래도 불안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정말로.
몇 달 전 인터뷰를 진행 중이던 한 곳에서 최종합격 연락을 받았다. 마침내,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이윽고 안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아는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마냥 천진하게 기쁘지 않은 복잡하고 모순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은 도무지 어떻게 형용해야 할까?
어쩌면 나는 이렇게 취업해도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이 날 뽑은 것을 후회하지 않게 증명해 내고야 말겠다는 의욕과 압박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나 스스로 나란 인간에 대한 증명에 대한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고민이 끝나도 여전히 다른 고민들은 남아있고 거기에 새로운 고민이 더해진다. 아마 죽을 때까지 고민하며 살겠지?
이효리 님이 부르던 노래가 뇌리에 스친다.
고민고민 하지 마 girl-
내 인생 중 한 챕터인 두 번째 구직기의 결말을 누군가 묻는다면 ‘힘들었고 고생했지만 결국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가 될 것이다. 어쩐지 저 결말 문장의 마침표가 그간의 내 모든 시간을 지나치게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의하는 것 같지만 요악하면 저 문장이 전부다.
사람들은 이야기의 과정보단 결말을 알고 싶어 한다. 이왕이면 좋은 결말로. 하지만 모든 도전이 '성공했습니다'로 맺어질 수 없다. 그리고 모든 도전이 그렇게 마무리될 필요도 없다. 나는 여든 번의 불합격 끝에 하나의 합격을 받았다. 어쩌면 '세 번째 구직기의 결말은 실패입니다.'로 쓰일 수도 있다. 일이 잘 되려면 운도 따라야 하고 끝까지 그 시간이 올 때까지 버티고도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지나온 그 시간들은 그 결말이 어떻든 결코 가볍고 단순한 여정이 아니다. 그간의 고통과 기쁨은 고스란히 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다.
인생의 어느지점, 어떠한 결말로 향하고 있는지 모를 오늘, 우리 모두 각자 삶의 무게를 지니고 살아간다. 모두들 크고 작은 각자의 고민들이 있다.
살아가기가 결코 만만하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별의 별일이 다 있지만 결국 웃는 날이 오기도 한다.
끝내, 내가 안고 있는 오늘의 고민이 해결될 날이 온다.
언젠가 모친께서 '사실 인생은 100번 반복되는 시련의 굴레에서 한 번의 해방, 그 한 번의 행복, 그 한 번의 힘으로 다시 다음에 굴러 들어오는 시련들을 버티는 거야.' 하던 그 말의 뜻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