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네. 쓰는데요?
어느 날 상사가 물었다.
'아, 그냥 물어보는 건데'
그냥 물어보는 게 아니군.
'너 일할 때 AI 쓰니?'
대답은 바로 나왔다.
'네. 써요.'
'이번 PR feature에서도 썼고?'
'네. X, Y부분은 AI 코드를 인용했습니다.'
'.. 그으래?'
*PR: pull request; 개발자가 코드 변경 사항을 팀에 검토받고 메인 코드에 통합하기 위해 요청하는 것(코드 리뷰 포함)
*feature: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특정한 기능; 예를 들어 사진을 편집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은 기능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다.
세상이 변하고 도구가 발달되어 편리해진 세상에서, 그 도구를 쓸 줄 아는데 굳이 안 쓸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렵지 않나? 아직도 부싯돌로 밥 짓는 사람이 있는 거야?
그러나 이다음 나온 상사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고 내 생각에 대한 고찰 시간을 가졌다.
'근데 앞으로 AI인용 코드에는 인용코드라고 주석 달아줄래? 그런 주석조차 달지 않고 리뷰를 요청하는 건 리뷰어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인데 그동안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을 상사가 짚었다.
리뷰어는 이 코드가 모두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 여기고 리뷰를 정성스레 주는데 어느 순간 느꼈을 쎄함, 그리고 그 쎄함이 사실이 되는 순간, 배신감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네 코드도 믿었기에 하는 옛 노래 가사처럼.
상사의 말에 나는 죄송하다고 답했다. 어쩐지 부끄럽기도 했다.
모든 코드를 내 머릿속, 순수 내 역량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부끄러움과 왜 상사가 말하는 부분을 미리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수치스러움이 너무나도 컸다.
난 언제쯤 내 코드에 부끄럽지 않은 자부심을 갖고 저런 말을 할 수도 있는 위치에 갈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상사는 상냥한 어투로 물론, 사내에서 AI 코드 쓰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며 너무 의존하진 말아라.라고 덧붙였다.
나와의 대화를 끝으로 상사는 바로 사내 Tech 채널에 AI code 사용 시 주석 붙이는 것에 대한 안건을 올렸다. 여태껏 회사에도 AI코드 사용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없기도 했고, 모두들 명확하게 하고 넘어가자는 취지였다. 어쩐지 또 작아지고 부끄러워지는 기분은 피할 길이 없다.
사실 상사가 AI 사용에 대한 부분을 꼬집었을 때, 구구절절 변명하고 싶었다.
나도 명색의 개발자인데 AI가 주는 코드를 들입다 전체 복사, 붙여 넣지 않는다.
필요한 것만, 내가 막힌 부분을 인용하고 반드시 그 코드를 숙지하는 시간을 가진다. 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지리멸렬한 변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로 마무리했다.
어차피 상사에겐 이래나 저래나 나는 AI코드 쓰는 애다.
AI 상용화가 가속화되면서 그 적용 및 범위, 법적 혹은 도덕적 수용 범위 등에 관하여 논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국가나 조직에서 정한 부분을 따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용자 개인이 올바른 사용 방식에 대해 각자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상사가 이 부분을 짚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중에 난 정말 무분별하게 AI코드를 사용하고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어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개발자가 될지도 모를 터다.
오늘의 수치심, 부끄러움으로 더 성실히 배우는 자세로 임하자는 각성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