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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Oct 07. 2024

신해철 10주기에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 님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를 맞습니다. 저보다 10살 연상이었으니, 꼭 지금의 제 나이에 세상을 떠났네요. 청소년 시절을 넥스트에 빠져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줄곧  플레이리스트에 신해철 님의 곡들을 간직하고 들어왔던 터라 그의 사망 소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라고 고백했지만, 저는 "나를 키운 건 3할은 신해철이었다"라고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 같은 노래를 들으며 나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생각했고, <영원히>,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들으며 오래 간직해야 할 꿈과 가치 들에 대해 생각했으며, <도시인>, <아! 개한민국>을 들으며 우리가 사는 곳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길렀습니다. <인형의 기사>, <먼 훗날 언젠가>, <일상으로의 초대> 같은 노래에서는 그의 조심스럽고 섬세한 사랑의 태도를 읽었고 <민물장어의 꿈>, <Friends> 같은 노래에서는 생의 희로애락을 어느 정도 겪어 내고 삶을 관조하는 중년의 그를 읽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책만큼이나 강렬하고 지속적으로 저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제 그의 새로운 노래를 들을 수 없지만, 그가 남긴 많은 노래와 말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위로를 줍니다. 언제나 내가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고민했고,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며 누구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사랑했던 음악인.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신해철 님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그의 노래 중에 자신의 묘비에 새기고 싶다고 말했던 곡 <민물장어의 꿈>을 들어 보려고 합니다.


2002.09.09. 발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https://www.youtube.com/watch?v=zzPP-FDPuk4


   '좁은 문'은 기독교적 상징으로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구원의 길을 상징하기도 하고, 남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 참된 자유와 생명의 길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세속적 성공이든 원하는 꿈을 성취한 상태이든 화자는 이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깎고 잘라서 작아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버리지 못한 자존심이 남아 자신이 조금 초라해 보입니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이곳은 아마 좁은 문을 통과하면 닿을 수 있는 곳이겠죠. 그곳에 닿을 수만 있다면 벅찬 마음으로 흐느껴 울고 웃다가 세상을 떠나도 미련이 남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그는 '좁은 문'을 통해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에 도달해야만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알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세상을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 낸,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가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자신의 묘비에 새겨달라 말하고 자신의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노래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의 어떤 곡보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노래입니다. 이제는 그가 그리도 사랑했던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걱정을 내려 놓고 평안을 얻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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