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꿈>
추석 연휴의 한가운데, 저는 어머니가 계신 춘천에 가지 않고 파주에서 추석을 보냅니다. 9월에는 프리랜서로 하고 있는 일 두 가지 일정이 겹친 데다 학교까지 다니기 시작해 추석 연휴가 아니었다면 정말 잠 못 자는 나날을 보낼 뻔 했습니다. 엄마가 보낸 국과 반찬들을 꺼내 식사를 해결하고 친구가 보내 준 아메리카노 한 박스를 냉장고에서 하나씩 꺼내 마시며 하루 15시간 이상 책상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런 날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일하며 보내야 하는 때에는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무엇을 위해 가족도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일에 파묻혀 있나 하는 마음이 문득 문득 고개를 듭니다.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얼굴도 떠오르죠. 이럴 때면 그 노래가 생각나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입니다.
조용필, <꿈>
앨범명: The Dreams
작사, 작곡: 조용필
발매일: 1991.4.1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조용필 님은 제 부모님 세대가 주된 팬층이지만, 팬들의 세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역사를 썼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셀 수 없는 히트곡을 만들고 부른 분이시죠. 이분의 노래들 중에 몇 곡은 플레이리스트에 들어 있어 자주 듣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곡이 <꿈>입니다. 이 노래는 조용필 님이 비행기 안에서 읽던 신문 기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꿈을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가끔 지인들에게 제가 시골쥐라서 서울살이가 힘들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생활 방식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골의 끈끈한 인간 관계가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여 비교적 서울살이에 빠르게 적응한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관계들이 이익이라는 약한 표면장력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사람보다 일이 먼저인 비정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있는 이곳이 "춥고도 험한 곳"이었구나 하는 현타가 옵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신문 기사를 보고 쓴 가사라는데, 기사의 주인공에 빙의라도 한 것처럼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잘 알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더구나 이렇게 뛰어난 공감 능력이 마음에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로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은 정말 신의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이 곡이 고향을 떠난 사람의 비애를 다루지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이유는 이 곡의 가사가 가진 보편성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성장하면서 자신이 자라던 곳에서 줄곧 살기 어렵고, 꿈을 찾아 부모님의 품을 떠나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그 과정에서 외로움, 고독함, 슬픔, 가치관의 혼란 등을 느끼게 되지요.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특히 이 부분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는 단순히 꿈을 찾아 서울에 온 시골쥐의 이야기를 넘어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많은 이별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노래는 2018년 남북평화협력기원 평양 공연에서 조용필 님이 직접 불렀는데요, 휴전선으로 남북이 가로막힌 현실에 이 노래보다 더 감동적인 노래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글라스 넘어 보이는 조용필 님의 눈도 촉촉해져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FNw6vxSRUg
하현우, 윤도현 님이 방송에서 부른 <꿈>도 레이저로 쏘는 듯한 단단한 목소리가 매력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RLIwsyWiaw
FT아일랜드의 이홍기 님이 부른 <꿈>은 좀더 섬세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hERmh_mPo
무엇보다 이 노래 리메이크 버전의 압권은 태연 버전입니다.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의 OST로 쓰였는데요, 뮤비와 함께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dMaU3Mj7EVY?si=Nfiw0GTLVwhFxvJ9
남은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