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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Sep 30. 2024

혼자 해변에 앉아 듣고 싶은 노래

짙은, <월정리>

시원한 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부니 이제 진짜 가을이 온 것 같습니다. 여름에도 잘 견뎠는데 시원해지고 나니 제주 해변 생각이 더 간절해집니다. 함덕 해변을 좋아하는데 요즘엔 사람이 많아 예전 같은 기분이 나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한적한 제주 해변에 앉아 노래를 듣고 커피를 마시며 느릿느릿 보내고 싶은 날입니다. 이 분위기에 들으면 '딱 좋을' 노래가 짙은의 <월정리>입니다.


아티스트: 짙은(Zitten)

발매일: 2021.08.04.

하늘에는 패러글라이딩 날고 있고 바다에는 너의 발목에 물결
뭐가 그리 무서워 뒷걸음쳤을까 그저 봄날의 볕일 뿐이었는데
밤이 되면 빛을 내는 해파리들 나에게 빠져버린 걸 얘기해
뭐가 그리 두려워 움츠렸나 내일이면 휩쓸려갈 삶일 텐데
오 그댄 박제돼버린 하늘 필름 속에 맺혀 버린 허상들
무너진 건물 이야기의 잔해들 끝에야 얻어낼 아름다운 문장
흐트러진 슬로모션처럼 걷고 바다는 뭍에게 질문을 걸고
처음으로 우리는 같이 섰네 위태로운 선상의 저 파도처럼
오 그댄 박제돼버린 하늘 필름 속에 맺혀 버린 허상들
무너진 건물 이야기의 잔해들 끝에야 얻어낼 아름다운 문장
난 증발하고 다시 저 구름으로 모든 시간과 기억들을 삼켜버릴 파도
사라지지 않을 것들과 너와 나
오 그댄 박제돼버린 하늘 필름 속에 맺혀 버린 허상들
무너진 건물 이야기의 잔해들 끝에야 얻어낼 아름다운 문장


https://youtu.be/OFeUIpCQdzM?si=fSs4ijoNOftHvYHp



이 곡은 해변의 풍경이 떠오르는 시각적 묘사도 뛰어나지만 곡의 정서를 형성하는 '그대'에 대한 메타포가 꽤나 복잡하고 아름답습니다.


"오 그댄 박제돼버린 하늘 필름 속에 맺혀 버린 허상들
무너진 건물 이야기의 잔해들 끝에야 얻어낼 아름다운 문장"


뼈대만 남기면 "그대는 아름다운 문장." 이것이죠. 그리고 이 아름다운 문장은 박제되어버린 듯한 저 하늘이 필름이라면 거기에 맺혀 있는 폐허의 풍경과 이야기의 잔해들로 맺혀 있는 허상들을 통과한 뒤에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대'라는 인물과 화자 사이에 얼마나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이 존재하는지, 또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화자를 고독하게 하는지, 그렇지만 너무 아름다워 박제돼버린 것처럼 남아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초입에 이 노래로 잠시 추억에 잠겨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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