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자 C Sep 09. 2024

너무 많이 사랑하여 삶이 비극이 된 사람에게

전람회, <새>

   주말 내내 외주 원고를 쓰느라 바빴지만, 틈나는 대로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뒤적이며 보냈습니다. 신형철 님의 책들은 '평론집'이 대부분인데, 이 책은 영화 평론집으로 10년 전에 출간된 것입니다. 이번에 10주년 기념판으로 출간된 책을 입수하여 순서 없이 뒤적이다가 빠져 들어 주말에 끝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책머리에 평론에 대해, 즉 해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더군요.


해석으로 생산된 인식이 심오할 때 그 해석은 거꾸로 대상 작품을 심오한 것이 되게 한다. 이런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은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이다. 작품을 '까는' 것이 아니라 '낳는' 일이다. 해석은 인식의 산파술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9p.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10주년 기념 특별판, 양장)


   그가 말한 것처럼 그의 평론을 읽다 보면 작품을 보는 그 심오한 해석에 경탄하게 됩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에 대한 글, 특히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에 대한 해석에 빠져 급기야 이 영화를 찾아 보고야 말았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어느 지점부터 애써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이 평론을 읽고 나서 시리즈 전편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본다면, 그동안 개성 있는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던 스네이프 교수를 중심으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스네이프 교수에게 빠져드는 일이 신형철의 글이 아니었어도 가능했을까 잠깐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의 글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스네이프에게 열광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스네이프는 호그와트의 이중첩자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선악의 구도가 분명한 해리 포터 속 세계에서 스네이프는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죠. 회차가 진행되면서 그가 악의 정점에 있는 볼드모트 편에 섰다는 것, 선의 수호자인 호그와트의 교장 덤블도어를 살해했다는 것으로 그가 악인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성물'에서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른 이유가 결국 해리 포터의 엄마 릴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전체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가장 큰 반전을 선사합니다.



   신형철 님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표면적으로는 볼드모트와 해리(그리고 덤블도어)의 '서사시'지만,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는 인물의 불운한 생을 그린 '비극'으로 읽는 일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비극'인 까닭은 그가 외부인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호그와트라는 공동체의 외부인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그는 사랑하는 릴리가 볼드모트에게 살해당하자 그녀의 아이를 지키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이중 스파이가 되어 절대악 볼드모트의 편에 섰고, 급기야 최후의 승리를 위해 덤블도어까지 살해하는 고통스러운 역할을 기꺼이 맡았습니다. 신형철 님은 이런 그의 행적을 기술하며 그가 "보다 더 근원적인 외부, 즉 사랑의 외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평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 대목은 우리가 스네이프의 행적을 보며 '그는 결국 선한 캐릭터였어!' 하는 안도감에 머물 때 핵심은 그게 아니라고 지적한 부분이었습니다. 핵심은 '그는 얼마든지 악할 수도 있었을 사람이었구나!'라는 두려운 깨달음에 있다고 말합니다. 릴리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악마와도 계약을 맺었을 인물이라는 것이죠.


이 감정에 가장 적절한 이름이 passion(열정, 수난)이 아니고 무엇일까. 수난을 부르는 열정, 즉 passion은 선도 악도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그것은 그토록 위험하다는 것,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그래서 인간을 파멸로 이끌기도 하는 그 열정이 인간의 가장 심오한 본질 중 하나라는 것 등은 이 서사의 마지막에 돌연히 제출되는, 이 시리즈 전체의 보수적인 교훈보다 더 중요한, 은밀하고 강렬한 메시지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234p.


   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본 뒤에 스네이프 교수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다가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앨런 릭먼이 2016년 사망했다는 것과 그가 현실에서도 19세에 만난 연인과 50년간 관계를 이어오다 2013년 둘만의 비밀 결혼을 했고 4년 만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생활을 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19살에 만난 연인과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이 스네이프처럼 파란만장하고 비극적이지는 않았어도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형철 님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이렇게 저를 주말 동안 스네이프 교수에게로, 그리고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로 이끌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 스네이프에게 어울릴 듯한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전람회의 <새>입니다.


앨범: 전람회 2집, 1996년 4월 발매

작사 김동률, 작곡 김동률, 편곡 김동률


날 보고 있나요
별이 지는 저 하늘 위에선
너무도 작은 나이겠죠
듣고 있나요
그대 떠난 뒤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나의 기도를
*별이 가득한 어느 여름밤
꿈꾸듯 내게 말했죠
그대 영원히 머물곳은
저 하늘 너머라고
그 어디쯤 있나요
내게 닿을 순 없나요
그대 없는 이 세상에
내 쉴곳은 없나요
나 이제 훨훨 날아올라
오래전 잃어버린 네 영혼을 찾아
그곳에서 날 기다릴
그댈 향해 날아
외로운 날개짓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lCEBKJzzF3g


https://www.youtube.com/watch?v=FgLRvDkZ0Qk


   이 노래 속 '그대'는 해리 포터의 엄마 릴리처럼 세상을 떠나 '저 하늘 위', '저 하늘 너머'에 가 있습니다. '그대'를 너무도 사랑했던 화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하고 있죠. 아마 다시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일 것입니다. '그대'가 없는 세상은 화자가 쉴 곳마저 없는 곳입니다. 화자는 '그대'의 영혼을 찾아 언젠가 훨훨 날아올라 '그대'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머지 않아 오기를 바라는 듯합니다. "나 이제 훨훨 날아올라"라는 표현을 보면 어쩌면 조만간 '그대'를 만나러 갈 것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너무도 사랑했다면 그 사랑 때문에 삶을 쉽게 놓기보다 삶을 견뎌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렇게 소원하는 그 만남이 아름다울 테니까요.


   이 노래의 화자는 어쩌면 스네이프 교수보다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그대가 "그곳에서 날 기다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스네이프는 그토록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거나 그 사랑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조차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그녀가 남긴 아이를 위해 선악의 저편에서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며 결국엔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바친 그를 하늘에서 만난다면, 그녀도 고마움의 포옹 정도는 해 주지 않을까요? 아마 그 정도로도 스네이프는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 생각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영화 속 스네이프와 현실의 앨런 릭먼에게 이 노래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rest in pea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