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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Sep 02. 2024

시작의 설렘과 기대를 담은 곡

김동률 <출발>

   낮에는 폭염이 여전하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9월의 첫 월요일, 저는 오늘부터 학교에 갑니다.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학교에 가려니 어색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설렘과 기대가 언제나 귀찮음과 두려움을 이겨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추천하는 곡은 뭔가를 시작하는 때의 설렘과 기대를 담은 김동률의 <출발>입니다.


2008년 발매 김동률 5집 [Monologue] 앨범 수록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촉촉한 땅바닥 앞서 간 발자국
처음 보는 하늘 그래도 낯익은 길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져도 내 길을 걸어가네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넓은 세상으로


https://youtu.be/xgvckGs6xhU?si=D8oIs9uYY-8R-jaJ


       아주 멀리, 아주 높이, 넓은 세상으로 떠나는 이의 설레고 가벼운 마음을 담은 곡입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의 화자도 앞으로 걸어야 길이 꽃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가끔 길을 잃기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죠. 그래도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넓은 세상을 향해 가기로 합니다. 준비물은 작은 물병, 먼지 카메라, 묻은 지도면 족하다면서. 출발은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맞는 같습니다. 뮤비에서는 가사에 충실한 영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동률 님이 직접 여행하는 장면들을 담고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언젠가부터 삶의 장르가 드라마나 스릴러가 아닌 시트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심각하고 무겁지 않게 그날그날을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가끔 장르의 문법에 맞지 않는 일들이 생기더라도 다시 본래 장르로 돌아가려고 애쓰면서. 이 노래를 들으며 오래 전에 읽은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 방랑』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실實'을 '베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260~261p.


   여행기지만, 인생기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인도라는 나라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라지만,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풍경도 결국에는 저런 느낌을 남기지 않을까요? 삶을 마치는 순간에 회상해 보면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고 비참하고 우스꽝스럽고 경쾌하고 화려하고 고귀했고 거칠었다는 저 문장을 그대로 말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삶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다채로운 모습으로 남겠지만, 세계는 좋았고 아름다웠다. 이것 말고 더 할 말이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아직 만나야 할 사람들, 경험해야 할 세계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폭염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뭔가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 분들이라면 가을이 시작되는 이때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뭔가를 향해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세상은 넓고 우리의 시간은 생각만큼 넉넉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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