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출발>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촉촉한 땅바닥 앞서 간 발자국
처음 보는 하늘 그래도 낯익은 길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져도 내 길을 걸어가네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넓은 세상으로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실實'을 '베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260~261p.